항목 ID | GC04200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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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根雨 |
영어음역 | Yi Geun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근우(李根雨)[1900~1976]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서 태어났으며 자세한 인적 사항은 알 수 없으나 판결문에 따르면 1900년에 출생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3월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 재학생 및 졸업생 7명이 범어사(梵漁寺)를 대표하여 서울의 3·1 운동에 참가하고 돌아와서 범어사 3·1 운동을 제안하자, 이근우는 적극적인 참여를 결의하였다. 애초 이들은 동래 장날인 3월 18일에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명정학교 학생 오계운(吳啓運)이 이러한 사실을 밀고하여, 18일 새벽 복천동의 범어사 동래포교당에서 주동자 상당수가 체포되었다.
하지만 이근우를 비롯하여 검거를 피한 40여 명의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은 18일 밤 동래읍 서문 근방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동래 시장을 거쳐 남문까지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은 19일에도 동래 시장 일대에서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격문을 뿌리고 만세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로 인해 이근우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부산감옥소에 투옥되었으며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다. 곧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원심대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고 대구감옥소에서 복역하였다. 이근우는 출옥 후 범어사 동래포교당 주지, 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에 있는 은하사(銀河寺) 주지를 지냈다.
[상훈과 추모]
1970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금정중학교 교정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와 1995년 구서1동 동래여자고등학교 앞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에 이름이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