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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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一運動有功碑 |
영어의미역 | Stone Monument for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
이칭/별칭 | 범어사 학생 3·1 운동 유공비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38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현익채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금정중학교에 있는 3·1 운동 당시 학생들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비.
[건립 경위]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일어난 3·1 운동은 동래 시장을 중심으로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1919년 3월 13일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1차 만세 운동에 이어, 2차 만세 운동은 동래 범어사 부설의 보통학교 과정인 명정학교(明正學校)와 고등 보통학교 과정인 범어사 지방학림 학생들이 이끌었다.
범어사 주지 오성월(吳惺月)과 한용운(韓龍雲)의 지원으로 김법린(金法麟), 차상명(車相明), 김영규(金永奎), 김봉한(金奉漢), 김상기(金相琦), 김한기(金漢琦) 등 두 학교 학생 40여 명이 주도한 범어사 학생들의 만세 운동은 3월 18일과 19일 이틀에 걸쳐 전개되었다. 총 34명이 대구 감옥과 부산 감옥에서 6개월에서 2년까지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이 사건으로 명정학교는 폐교되어, 1926년에야 복교되는 파란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거족적인 민족 운동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1969년 9월 26일 청룡동 일심계가 중심이 되어 ‘3·1 운동 유공비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듬해인 1970년 3월 1일 명정학교의 후신인 금정중학교 교정에 유공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3·1 운동 유공비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에 있는 금정중학교 교문 입구에 위치한다.
[형태]
높이 4.14m, 폭 1.7m, 터 둘레 12m의 3단 비석이다.
[현황]
2009년 9월 22일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 시설 40-1-27로 되었고, 2010년 6월 개·보수를 통하여 면모를 일신하였다. 비 뒤편 돌담에는 3·1 운동을 재현한 부조[2m×1.5m]를 조각하였고, 앞에는 제단과 안내판을 설치하였으며, 경계석 주위에 잔디와 조경수를 식재하였다. 한편 범어사 3·1 운동 유공자의 유물 130여 점이 현재 금정중학교 명정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금정중학교는 명정학교의 또 하나의 후신인 청룡초등학교와 공동으로 3·1 운동 재현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3·1 운동 유공비와 명정박물관이 금정중학교 안에 위치하고 있어 재학생과 교직원, 시민들에게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학습하는 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