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430 |
---|---|
한자 | 金永奎 |
영어음역 | Gim Yeonggyu |
분야 |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차철욱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영규(金永奎)[1898~1952]는 부산 범어사(梵漁寺) 소속 승려로 범어사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출생과 사망 연도 이외에 자세한 인적 사항은 알 수 없다.
1919년 2월 불교계의 민족 대표인 한용운(韓龍雲)이 범어사로 내려와 주지 오성월(吳惺月), 이담해(李湛海), 오이산(吳梨山) 등을 만나 만세 운동을 상의하고 올라갔다. 이에 김영규를 비롯한 차상명(車相明), 김봉환(金奉煥) 등은 3월 1일 경성 파고다 공원 만세 시위에 범어사 대표로 참석하였다. 이후 이들이 범어사로 내려오고, 동시에 중앙학림에서 범어사로 파견된 김법린(金法麟), 김상헌(金祥憲)이 중심이 되어 동래 지역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김영규는 범어사 소속 승려인 차상명·김봉환, 범어사 지방학림 학생 김상기(金相琦), 명정학교 학생 김한기(金漢琦) 등과 만세 운동을 모의하면서, 범어사 부속 학생들을 만세 운동에 참여시킬 방법을 논의하였다. 이어 3월 17일 오후 범어사에서 열린 명정학교와 지방학림의 졸업생 송별회에 참석한 30~40명에게 동래에서 진행될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김영규의 만세 참여 연설을 들은 많은 학생들은 동래로 가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김영규는 3월 18일 새벽 범어사 동래포교당에서 시위 준비 과정에서 체포되어 1919년 5월 20일 동래 지역 만세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대구복심법원에서 2년형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또한 3·1 운동 유공비건립추진위원회는 범어사 승려와 부속 지방학림 및 명정학교 학생들의 3·1 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0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의 금정중학교 교정에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를 세웠다. 그리고 1995년에는 범어사 인근 도로변에도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를 세워 김영규를 비롯한 3·1 운동 참가자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