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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406
한자 車相明
영어음역 Cha Sangmyeong
분야 역사/근현대,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44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종교인
성별
대표경력 범어사 주지
출생 시기/일시 1895년 8월 2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일 - 서울 3·1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범어사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7일 - 징역 2년형을 선고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조선불교청년회 범어지회 담당
활동 시기/일시 1923년 - 장안청년회·동래청년회·동래노농회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8년 - 싯달야학 교장에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30년 6월 - 김해 은하사 주지에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36년 6월 - 김해 은하사 주지 퇴임
활동 시기/일시 1936년 4월 - 범어사 주지에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총본산건설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37년 7월~8월 - 중일 전쟁 지지 법회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39년 4월 - 범어사 주지 퇴임
몰년 시기/일시 1945년 4월 7일연표보기 - 차상명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2010년연표보기 - 건국훈장 애족장 취소
관련사건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범어사 3·1 운동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됨
출생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학교|수학지 명정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지도보기
활동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활동지 조선불교청년회 범어지회 - 부산광역시 동래구
활동지 장안청년회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활동지 동래청년회 - 부산광역시 동래구
활동지 동래노농회 - 부산광역시 동래구
활동지 싯달야학 - 부산광역시 동래구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친일 승려.

[가계]

아버지는 차인수(車仁守)이고, 어머니는 이수년(李守年)이다. 1923년 최학전(崔學傳)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었다.

[활동 사항]

차상명(車相明)[1895~1945]은 1895년 8월 2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교리[현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차인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차상명은 일찍이 범어사(梵漁寺)에 들어가 명정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당시 차상명범어사의 승려로, 3·1 운동을 앞둔 2월 하순경 한용운(韓龍雲)범어사로 와서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자 김법린(金法麟) 등과 함께 서울로 가서 3·1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온 이들은 동래 장날인 3월 18일에 동래 장터에서 범어사 3·1 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등사하여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3일에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 시위가 일어나 분위기가 고조되자, 차상명은 3월 17일에 열린 범어사 명정학교범어사 지방학림의 졸업생 송별회를 틈타 학생들에게 이튿날로 계획된 시위에 참가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18일 새벽 동래구 복천동 범어사 동래포교원에 있던 차상명 등 주동자들은 명정학교 학생 오계운(吳啓運)의 밀고로 출동한 일제 경찰과 헌병의 습격을 받고 체포되고 말았다. 차상명은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가 형기를 줄여 출옥하였다.

차상명은 1920년에는 조선불교청년회 범어지회를 담당하였고, 1923년에는 장안청년회·동래청년회·동래노농회에서 활동하였으며, 범어사 동래포교당 주지를 역임하였다. 1928년에는 범어사 동래포교당이 운영하는 싯달야학의 교장을 지내는 등 동래 지역의 사회 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1930년 6월 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의 은하사(銀河寺) 주지로 취임하여 1936년 6월까지 재직하였고, 1936년 4월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부산 범어사 주지로 취임하여 1939년 4월 임기 만료로 물러날 때까지 재임하였다.

차상명은 1937년 2월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31대 본산 주지 회의에 참석하여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송광사(松廣寺) 주지 임석진(林錫珍)과 함께 총본산건설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범어사에서는 7월, 8월 두 차례에 걸쳐 일제가 일으킨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국위 선양 무운 장구 기원 법요식’을 개최하고 헌금과 위문금을 걷어 납부하였다. 차상명이 주지로 있던 1938년 4월 1일까지의 집계에 따르면, 범어사 본사·말사가 헌납한 국방 헌금과 위문금은 총 1,720원 64전으로 31본산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액수였다. 차상명은 1945년 4월 7일 부산시 동래구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1990년에 3·1 운동 때의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나 친일 전력이 인정되어 2010년에 취소되었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인명 사전』에 수록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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