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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045
한자 孫君浩
영어음역 Son Gunho
이칭/별칭 손동호(孫東浩)
분야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출생 시기/일시 1902년 9월 24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징역 6월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76년 5월 3일연표보기 - 손군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0년 -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 건립[1970]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 건립[1995]
추모 시기/일시 2005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연표보기 - 범어사 3·1 운동
출생지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
학교|수학지 명정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지도보기
활동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기념비 금정중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385지도보기
기념비 동래여자고등학교 앞 -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1동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손군호(孫君浩)[1902~1976]는 1902년 9월 24일에 경상남도 양산군 웅상면 평산리[현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서 태어났다. 손군호는 부산 범어사(梵漁寺)에 승적을 두고 명정학교[범어사 불교 학교. 현 청룡초등학교]에 입학하였으며, 명정학교의 호국 불교 정신과 민족의식을 강조하는 교육 방침에 의하여 급진적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당시의 불교학자이며 불교계 지도자인 한용운(韓龍雲)의 저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1919년 서울의 3·1 운동에 참여했던 김법린(金法麟)·김상헌(金祥憲) 등이 범어사로 돌아오자 범어사에서도 중견 청년 승려인 김봉환(金奉煥)·김영규(金永奎)·차상명(車相明), 지방학림 학생 김상기(金相琦)·허영호(許永鎬), 명정학교 학생 김한기(金漢琦) 등이 지방학림과 명정학교 학생들을 규합하여 3월 18일 동래 장터에서 장날을 기하여 의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명정학교 학생이던 손군호도 적극 가담하였다.

3월 17일 밤 명정학교와 지방학림의 졸업생 송별회를 마친 후 다음날의 만세 시위를 계획하기 위해 주동자들이 복천동에 있는 범어사 동래포교당에 잠입할 때 손군호도 함께 하였다. 명정학교 학생 오계운(吳啓運)이 만세 시위 정보를 누설한 탓에 범어사 동래포교당에 모인 주동자들이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지만 손군호는 용케 피신하였다. 이후 손군호는 검거를 피한 이들과 함께 3월 18일과 19일 동래 시장 일대에서 격문을 뿌리며 전개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손군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고 부산감옥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광복 이후 손군호는 고향 웅상면(雄上面) 주민들의 추대를 받아 웅상면장을 역임하였다. 1976년 5월 3일 7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5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또한 1970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금정중학교 교정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와 1995년 구서1동 동래여자고등학교 앞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에 손군호의 이름이 나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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