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김봉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779
한자 金奉愛
영어음역 Gim Bongae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17번길 17[좌천동 768-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수학 시기/일시 1920년 - 부산진일신여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으로 체포됨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징역 5월형을 선고 받음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연표보기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학교|수학지 부산진일신여학교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1동 768-1지도보기
활동지 부산진일신여학교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1동 768-1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봉애(金奉愛)는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시작된 직후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서울의 만세 시위를 알리며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고무하였다. 김봉애는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인 박시연(朴時淵)·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 김반수(金班守)·심순의(沈順義)·김복선(金福善), 고등과 3학년 김응수(金應守), 고등과 2학년 김난줄(金蘭茁)·김신복(金新福), 고등과 1학년 이명시(李明施)·송명진(宋明進), 학년 미상 김순이(金順伊)·박정수(朴貞守) 등과 더불어 시위 항쟁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11일을 시위 일자로 정하고 태극기 100여 장을 만들어 준비하였다.

3월 11일 김봉애는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좌천동 일대에서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부산지방법원에서 김봉애 역시 다른 주동자들과 함께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1919년 3월은 김봉애 등 부산진일신여학교 7회 졸업생들의 졸업식이 거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7회 졸업생들은 주경애·박시연 두 교사의 출옥을 기다려 이듬해인 1920년 봄에 8회 졸업생들의 졸업식을 먼저 치른 뒤에 두 교사와 함께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