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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 운동 기념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737
한자 釜山鎭日新女學校萬歲運動記念碑
영어의미역 Stone monument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of Busan JinilWomen’s School students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3동 산7-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기념비
관련인물 주경애|박시연|김응수|송명진|김순이|김난출|박정수|김반수|심순의|김봉애|김복선|김애련|이명시
재질 화강암
크기 3.4m[높이]|6m[둘레]
소유자 동래여자고등학교
관리자 동래여자고등학교
건립 시기/일시 1984년 11월연표보기 - 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 운동 기념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92년 5월 14일 - 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 운동 기념비 이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현 소재지 동래여자고등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3동 산7-1지도보기
원소재지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768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3동에 있는 부산진일신여학교의 3·1 운동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여기에 호응하여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은 3월 11일과 4월 8일에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1984년 11월 부산·경상남도 지역 3·1 운동의 선구가 된 부산진일신여학교의 3·1 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당시 부산직할시에서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 운동 기념비(釜山鎭日新女學校萬歲運動記念碑)는 1984년 11월 옛 부산진일신여학교 자리에 세웠다. 이후 관리가 소홀해지자 동래여자고등학교에서 부산시에 건의하여 1992년 5월 14일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3동 산7-1번지에 있는 동래여자고등학교 교정으로 이전하였다.

[형태]

사다리꼴 모양의 넙적한 돌기둥 위에 가로 길이가 약간 긴 동글납작한 비석을 올린 형태이다. 위쪽의 돌 가운데 부분을 안으로 평평하게 깎고, 거기에 비문을 써 넣었다. 비의 크기는 높이 3.4m, 둘레 6m이다.

[금석문]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이 우리의 주권을 빼앗아 총칼을 앞세우고 무단 정치를 감행한 지 10년에 접어드는 1919년 3월 1일 이날을 기하여 반만 년 역사의 권위를 딛고 온 민족은 겨레의 성충과 민족 자긍의 의지를 독립 선언문에 담아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독립을 찾고 자유를 회복하려는 우리의 결의를 일본 당국에 통보하고 세계만방에 호소하였다. 누가 조국을 사랑하지 않으며, 자유를 원치 않으랴, 독립의 외침은 요원의 횃불처럼 삼천리강토에 메아리쳐 나갔다.

이곳 일신여학교에서는 이러한 서울 소식을 알고 거사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완료한 후 꽃 같은 젊은 여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손에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높이 외치니, 아아 하느님, 이 소녀들의 외침을 굽어 살피소서, 자유 그것 아니면 죽음도 사양치 않겠다는 이 겨레의 꽃들을 어여삐 여기소서! 남자는 그래도 의리를 배웠지만 여자의 가는 길은 부도인데도 어찌하여 위국충절 앞장섬인고. 더욱이 님들의 독립 만세는 부산·경남 지역의 선구가 되니 국가에 어찌 남녀의 구별이 있으랴.

당시 학생인 김응수 님이 경찰 심문에서 “세 살 먹은 아이도 제 밥을 빼앗으면 달라고 우는데 우리들은 우리나라를 돌려 달라고 하는데 무엇이 나쁘냐”고 한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며, 님들의 장한 뜻을 후세에 전하고자 사연의 대강을 돌에 새겨 당시의 일신여학교 자리에 세우는 바이다. 근거 정중환, 근서 고동주, 조각 장상만, 건립 부산직할시, 건립 일자 1984년 11월”

[현황]

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 운동 기념비동래여자고등학교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부산진일신여학교의 만세 시위는 부산 지역 3·1 운동의 효시를 이루는 것으로, 일제가 조선 침략의 교두보로 삼으며 개발하던 부산 지역이 바로 그러한 이유로 민족 모순이 가장 첨예한 현장이었음을 드러내는 일대 사건이었다. 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 운동 기념비는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고 후세에 전하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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