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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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石文 |
영어의미역 | Epigraph Material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강대민 |
[정의]
부산 지역에 있는 석재, 금속류 등에 기록된 글씨나 그림.
[개설]
금석문(金石文)은 금속이나 석재 등에 새겨진 글이나 그림을 뜻한다. 금석문의 대부분은 비석 등에 기록되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자연석에 새겨진 경우도 있다. 넓게는 목재나 토기, 기와 등에 기록된 문자를 포함할 수도 있다. 금석문은 일반적인 문헌 사료보다는 당대의 역사적 사실에 근접한 경우가 많고, 후대에 의한 훼손이나 수정도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문헌 사료의 한계를 보완하고 역사적 사실을 바르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적비]
사적비(事蹟碑)는 금석문 본래의 기능에 가장 충실한 것으로 역사적 현장이나 특정 건축물의 설립 현장에 그와 관련된 사실을 전달하고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된다.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사적비로는 대부교비(大夫橋碑), 명월사 사적비(明月寺事蹟碑), 가락국 태조왕 영후 유허비(駕洛國太祖王迎后遺墟碑), 금정산성 복설비(金井山城復設碑), 범어사 사적비(梵漁寺事蹟碑), 동래 남문비(東萊南門碑), 자성비(子城碑), 정발 전망비(鄭撥戰亡碑), 이섭교비(利涉橋碑), 내주 축성비(萊州築城碑), 정운 순의비(鄭澐殉義碑), 첨사 윤흥신 순절비(僉使尹興信殉節碑), 의숙공 최강 유적비(義肅公崔堈遺蹟碑), 객사 건성 비문(客舍建成碑文), 정몽주 유촉비(鄭夢周遺躅碑) 등이 있다.
[기공비]
기공비(紀功碑)는 역사적 인물의 특정 업적을 기리거나 중요한 토목 공사의 완공을 기념하여 건립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기공비로는 대저 수리 공사 기념비(大渚水利工事紀念碑), 흥국사 중건 공로자 기념비(興國寺重建功勞者紀念碑), 이홍현 구휼기념비(李弘鉉救恤紀念碑), 조정환 구국기적비(曺正煥救國紀蹟碑), 고관노철수매동효충비(古官奴鐵壽邁同效忠碑), 유정 대사 충의비(惟政大師忠義碑), 박규희 자선기념비(朴圭熙慈善紀念碑), 강신갑 기념비(姜信甲紀念碑) 등을 들 수 있다. 일부 공적을 기념한 비석 등은 송덕비와 양식 따위가 거의 동일하나 상기의 금석문은 근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전근대 시기 수령의 송덕비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단비]
국가와 지역 사회에 큰 업적이나 공로를 쌓은 사람을 모시기 위하여 제단을 설치하여 해마다 제사를 올리는데, 이러한 사람들의 공적과 충의의 정신을 알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 단비(壇碑)이다. 대표적으로는 남강 조 선생 제단비(南岡曺先生祭壇碑), 정공단(鄭公壇), 애향비(愛香碑), 영보단 비(永報壇碑), 송공단(宋公壇), 양조한 순난비(梁朝漢殉難碑), 동시 사난 민인위(同時死亂民人位), 조영규 순난비(趙英珪殉難碑), 이항 생사비(李抗生祠碑), 민영훈 생사비(閔永勳生祠碑), 이욱연 거사단비(李郁延去思壇碑), 현감 오윤영 생사단 비(縣監吳胤泳生祀壇碑)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임진왜란 시기의 충신과 민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단비가 대부분이다. 생사단 비(生祀壇碑)는 지역 출신의 수령이 자신의 탄생지로 부임하였을 때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하는 것이고, 거사단비(去思壇碑)는 이임한 수령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특별히 제작되는 단비로 송덕비와 달리 사언(四言)의 명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송덕비]
송덕비(頌德碑)는 전하는 금석문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으로 선정비(善政碑),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청덕선정비(淸德善政碑), 청덕선정 만고불망비(淸德善政萬古不忘碑), 거사비(去思碑), 만세송덕비(萬世頌德碑)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향교에서는 따로 흥학비(興學碑)를 세워 수령의 공덕을 찬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송덕비는 형식적인 관행에 따라 세워지며, 재임 기간 중에 세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묘비]
묘비(墓碑)는 묘소 근처에 묘주의 일생을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이다. 묘표(墓表), 묘갈명(墓碣銘), 신도비명(神道碑銘) 등이 새겨진다. 다른 형식으로는 고승의 사리를 부도에 넣어 보관하고 근처에 고승의 업적을 새긴 비석을 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탑비(塔碑)라고 한다. 석가여래 사리탑비(釋迦如來舍利塔碑), 선교 양종 월조당 대선사 탑비(禪敎兩宗月照堂大禪師塔碑) 등이 전한다. 동시에 민간에 남아 있는 묘비로는 동래 정씨(東萊鄭氏)의 정묘비(鄭墓碑), 강릉 김씨(江陵金氏), 파평 윤씨(坡平尹氏), 창원 정씨(昌原鄭氏) 등의 묘비가 문중 재실에 전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정려비]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는 이에 상응하는 윤리 의식을 실천한 효자 및 열부의 행적을 정려비(旌閭碑)라는 이름으로 건립하였다. 대표적인 비로는 김석숭 정려비(金碩崇旌閭碑), 열부 경주 최씨 정렬각(烈婦慶州崔氏貞烈閣), 김홍수 효사비(金洪秀孝思碑), 천승호·경주 이씨 정려비(千乘昊慶州李氏旌閭碑), 열녀 월성 김씨 정려비(烈女月城金氏旌閭碑) 등이 있다.
[시비]
시비(詩碑)의 경우 암각에 새겨 전하는 경우가 아니라 비에 새겨 전하는 시비는 숫자가 적어 매우 귀한 편이다. 부산 지역의 전통 시대 시비에는 두 개의 시비가 있는데 하나는 금강 공원에 고종 시기의 동래 부사 정현덕(鄭顯德)의 시를 기록한 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동래유치원 내 옛 태평원(太平園) 자리에 있는 태평원 시비(太平園詩碑)가 그것이다.
[조약비]
전하는 경우가 드물긴 하지만 어떤 규약이나 조약, 약속, 명령 등을 새겨 놓은 금석문이 있는데 이를 통칭하여 조약비(條約碑)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척화비(斥和碑)나 하마비(下馬碑)를 들 수가 있다. 부산 지역에는 1683년(숙종 9) 만들었던 약조 제찰비(約條制札碑)가 전하는데, 이는 왜관에 거주하는 왜인들의 정계(定界) 출입을 금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암각문]
보통 금석문은 채취한 돌을 잘 다듬어 그 위에 글씨를 남기는 것이 보통이지만, 가끔 자연석 위에 직접 글을 새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암각문(巖刻文)이라고 칭한다. 부산의 대표적인 암각문으로는 범어사 청룡암에 전하는 동래 부사 이안눌(李安訥)의 범어사 청룡암 시석(梵魚寺靑龍巖詩石)이 있다. 다른 하나는 기장군 해동용궁사에 있는 학사암(學士巖)의 시이다. 학사암에는 모두 8수의 시가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하나는 금강 공원에 있는 금강원 시비(金剛園詩碑)인데, 이는 금강원의 조성 내력을 기록한 것으로 일제 강점기에 작성되어 해방 후 시멘트로 덮였다가 근래에 시멘트가 떨어지며 그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