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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735
한자 金應守
영어음역 Gim Eungsu
이칭/별칭 김수(金壽)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17번길 17[좌천동 768-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출생 시기/일시 1901년 1월 21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0년 3월 - 부산진일신여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으로 체포됨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징역 5월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79년 8월 18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연표보기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출생지 경상남도 통영시
학교|수학지 부산진일신여학교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1동 768-1지도보기
활동지 부산진일신여학교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1동 768-1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응수(金應守)[1901~1979]는 1901년 1월 21일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으로 김수(金壽)라고 불리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직후 서울 지역 학생들이 부산에 와서 비밀리에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며 학생들의 만세 시위를 고무하였다.

이 때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응수는 교사 주경애(朱敬愛)에게 전단을 건네주고 지도를 요청하였다. 주경애는 동료 교사들을 규합하는 한편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에 연락하며 만세 시위에 나섰다. 김응수는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 김반수(金班守)·심순의(沈順義)·김복선(金福善)·김봉애(金奉愛), 고등과 2학년 김신복(金新福), 고등과 1학년 이명시(李明施)·송명진(宋明進), 학년 미상 김순이(金順伊)·박정수(朴貞守) 등과 더불어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1919년 3월 11일에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좌천동 거리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김응수는 다른 주동 학생들과 더불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경찰의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가출옥하였다. 1920년 3월 부산진일신여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통영으로 가서 심신을 치유한 뒤, 유치원 보모와 야학당의 교사로 활동하면서 고향의 젊은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심어 주었다. 광복 이후 부산으로 와서 교회의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여생을 보내다가 1979년 8월 1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48년 12월 15일 대한민국 국제 승인 경축 통영 시민대회에서 감사장을 받았다.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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