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781 |
---|---|
한자 | 朴貞守 |
영어음역 | Bak Jeongs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17번길 17[좌천동 768-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경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정수(朴貞守)은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시작된 직후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서울의 만세 시위를 알리며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고무하였다. 박정수는 같은 학교 학생인 김반수(金班守)·심순의(沈順義)·김복선(金福善)·김봉애(金奉愛)·김응수(金應守)·김신복(金新福)·김난줄(金蘭茁)·이명시(李明施)·송명진(宋明進)·김순이(金順伊) 등과 더불어 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11일을 시위 일자로 정하고 태극기 100여 장을 만들어 준비하였다.
3월 11일 박정수는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좌천동 일대에서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 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같은 학교 고등과 4학년으로 역시 이날의 만세 시위를 주동한 김반수와 함께 숨어 있었다. 그곳에서 박정수와 김반수는 부산진일신여학교의 일본인 교사의 오빠인 사카이[酒井] 형사에게 체포되었다. 박정수는 다른 주동자들과 함께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1922년 6월 부산진일신여학교 선배[고등과 1회 졸업생]이자 독립운동가인 박덕술(朴德述)이 부산여자청년회의 회장으로 선임되자, 박정수는 김난출·이명시 등과 함께 부산여자청년회에 가입하여 위생부에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