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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785
한자 宋明進
영어음역 Song Myeongji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17번길 17[좌천동 768-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수학 시기/일시 1922년 3월 - 부산진일신여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으로 체포됨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징역 5월형을 선고 받음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1일연표보기 - 부산진일신여학교 3·1 운동
학교|수학지 부산진일신여학교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768-1지도보기
활동지 부산진일신여학교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768-1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송명진(宋明進)은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1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3·1 운동을 알리고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며 시위를 고무하였다. 송명진은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인 박시연(朴時淵)·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 김반수(金班守)·심순의(沈順義)·김봉애(金奉愛)·김복선(金福善), 고등과 3학년 김응수(金應守), 고등과 2학년 김신복(金新福)·김난줄(金蘭茁), 고등과 1학년 이명시(李明施), 학년 미상 김순이(金順伊)·박정수(朴貞守) 등과 더불어 시위 항쟁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11일을 시위 일자로 정하고 태극기 100여 장을 만들어 준비하였다.

3월 11일 송명진은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과 더불어 좌천동 일대에서 만세 시위를 벌리고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부산진일신여학교의 만세 시위는 부산 지역 3·1 운동의 효시로, 일제 조선 침략의 교두보 역할을 하며 개발되었던 부산 지역이 바로 그러한 이유로 민족 모순이 가장 첨예한 현장이 되었음을 드러내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송명진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이후 복학하여 1922년 3월에 부산진일신여학교를 졸업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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