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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677
한자 金水先
영어음역 Gim Suse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송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여성 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근우회 동래지회 위원장
활동 시기/일시 1921년 5월 - 동래여자청년회 설립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5년 5월 - 동래여자청년회 야간 학교 교장 겸 이사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동래청년연맹 여성 위원으로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26년 1월 - 적광회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28년 3월 - 근우회 동래지회 준비 위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9년 3월 - 근우회 동래지회 제1회 정기 대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29년 7월 - 근우회 중앙 집행 위원 후보 위원으로 선출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활동지 동래여자청년회 - 부산광역시 동래구
활동지 동래청년연맹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62지도보기
활동지 적광회 - 부산광역시 동래구
활동지 근우회 동래지회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62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

[활동 사항]

김수선(金水先)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1920년대 초 동래 지역에서 청년 운동을 비롯한 사회 운동이 확산되면서 계몽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1921년 5월 김수선박소수(朴小守), 이기년, 김수범 등과 함께 동래여자청년회의 설립에 앞장섰다. 1925년 5월 동래여자청년회는 여성의 문맹을 타파하고 지식을 증진하며 사회 문제와 여성 문제를 계몽하기 위하여 야간 학교를 설치하였다. 이 때 김수선은 야간 학교의 교장 겸 이사로 활약하면서 여성의 의식화에 힘썼다.

이 무렵 사회주의 사상이 유포되면서 동래 지역의 사회 운동에도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 결과가 1925년 11월 22일 동래청년연맹의 창립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여 김수선은 기장의 오경원, 구포의 이은자(李殷子) 등과 더불어 동래청년연맹의 여성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동래청년연맹에 참여한 여성 단체는 동래여자청년회, 기장여자청년회, 수영여자청년회, 구포여자청년회 등이 있었다. 이 단체들은 독자 활동을 지속하는 동시에 연대 활동을 병행하였다. 여성 단체들은 동래청년연맹에서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는 활동을 같이 추진하였다.

한편 1926년 1월 김수선박소수, 이은자 등과 함께 적광회(赤洸會)라는 사회주의 사상 단체를 따로 설립하였다. 이 가운데 이은자는 1925년 8월 사회주의 계열로 구포여자청년회를 설립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이 무렵 김수선은 여성 문제의 해결은 사회 구조적 모순의 해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에 이르렀다. 결국 동래여자청년회는 1928년 5월 근우회 동래지회의 설립으로 해체되었다. 이때 김수선권복해, 김계년, 이가우, 구필순, 장갑수, 이영희 등과 함께 근우회 동래지회의 준비 위원을 맡아 설립에 앞장섰다.

김수선은 1929년 3월 근우회 동래지회 제1회 정기 대회에서 신임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1929년 7월 근우회 제2회 정기 대회에서 박차정(朴次貞), 김계년과 함께 중앙으로 진출하였다. 근우회는 이때 각 지회의 세력에 따라 집행 위원을 배분하여 박차정과 김계년이 중앙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김수선은 후보 위원이 되었다. 근우회 동래지회의 해소 이후 김수선의 활동은 밝혀진 바가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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