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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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德瓘 |
영어음역 | Choe Deokgw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경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덕관(崔德瓘)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대사 마을 사람이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 대사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최덕관은 같은 마을의 허병(許炳)이 3월 29일과 30일에 일어난 김해 3·1 운동 소식을 접한 뒤 조카 허종식과 더불어 만세 시위를 위해 동지를 규합하자 뜻을 같이하였다. 최덕관과 허병은 4월 2일의 김해 장날을 기하여 김해 2차 의거를 단행할 것을 모의하였다.
4월 2일 장꾼이 가장 많이 모이는 오후 4시경이 되자 최덕관은 허병과 함께 시장 내의 십자로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면서 싸전[쌀가게]에서 고기전[식육점]으로 내달렸다. 그러자 군중 약 60명이 호응하여 만세를 불렀다. 최덕관은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주동자로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5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 받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