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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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甲伊 |
영어음역 | Yi Gap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경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갑이(李甲伊)[1897~1929]는 1897년 12월 20일에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2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이갑이는 1919년에 중구 영주동의 부산진공립보통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서울에서 3·1 운동이 시작된 후 부산에서도 3월 11일 좌천동의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운동이 벌어졌다. 이날의 시위로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과 시위를 지도한 교사 주경애(朱敬愛)와 박시연(朴時淵)이 경찰에 검거되자 이 소식을 들은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은 4월 8일에 다시 만세 시위를 일으켰다.
이때 이갑이는 오후 8시경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애련(金愛蓮), 전호봉 등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의 시위는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 50여 명과 인근 주민 수백 명이 합세하여, 좌천동 신도로에서 진행되었다. 일본 경찰이 행진을 제지하고 주동자를 검거하자, 이갑이는 일본 경찰에게 맹렬하게 대항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1919년 5월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6년부터 조선방직회사에 전기공으로 근무하였다. 1929년 10월 26일 이갑이는 작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고압 동력선을 절단하려 하였다. 그러나 누군가의 밀고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선방직회사의 일본인 전기주임이 이갑이를 감전시켜 살해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