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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483
한자 鄭浩宗
영어음역 Jeong Hoj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사상구 백양대로572번길 17-21[감전동 262-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출생 시기/일시 1901년 2월 9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 동래 장터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81년 9월 28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연표보기 - 동래 장터 3·1 운동
출생지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262-1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학교|수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40지도보기
활동지 동래 장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호종(鄭浩宗)[1901~1981]은 1901년 2월 9일에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262-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에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에도 전해졌다. 이 무렵 3월 7일에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학생 대표가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인 김귀룡(金貴龍)·엄진영(嚴進永) 등에게 독립 선언서를 전해 주었다.

이에 정호종은 동급생인 추규영(秋圭暎)·손영수·김기삼(金琪三)·서진랭(徐鎭冷)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 계획에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3월 10일 동래고등보통학교 선배로 경성고등공업학교에 다니던 곽상훈(郭尙勳)이 독립 선언서를 수학 교사 이환(李環)에게 전해 주었으며 이들이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의거의 참모 역할을 담당하면서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정호종은 주동 학생들과 함께 엄진영의 집 및 자신과 백정기(白正基)·고영건(高永建)의 하숙방 등을 전전하면서 협의한 끝에 동래 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를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리고 3월 11일부터 13일에 걸쳐 고영건의 하숙방에서 주동 학생들과 함께 독립 선언서와 대형 독립기, 태극기 등을 준비하였다.

3월 13일 오후 2시가 되자 엄진영이 동래군청 앞 망미루(望美樓)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를 신호로 정호종은 다른 주동 학생들과 함께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고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는 등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50여 명의 일본군과 수십 명의 기마경찰이 출동하여 야만적인 발포를 하며 닥치는 대로 군중을 체포하였다. 이때 정호종도 체포되어 부산감옥소에 투옥되었다.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1년형을 선고 받고 부산감옥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81년 9월 28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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