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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337
한자 梁春到
영어음역 Yang Chundo
분야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종교인
성별
대표경력 범어사 승려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징역 6월형을 선고 받고 부산감옥소에 수감
추모 시기/일시 1970년 -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 건립[1970]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 건립[1995]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연표보기 - 범어사 3·1 운동
출생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학교/수학지 명정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범어사 지방학림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지도보기
활동지 부산감옥소 -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추모기념물 추모 기념물 -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385 금정중학교지도보기
관련 유적 동래여자고등학교 앞 -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 동래여자고등학교 앞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양춘도(梁春到)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범어사(梵魚寺)에 출가하여 승적을 가졌으며, 명정학교[현 청룡초등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서울의 3·1 운동에 참여하였던 김법린(金法麟), 김상헌(金祥憲) 등이 범어사로 돌아오자 범어사에서도 중견 청년 승려 김봉한(金奉煥)·김영규(金永奎)·차상명(車相明)범어사 지방학림 학생 김상기(金相琦)·허영호(許永鎬), 명정학교 학생 김한기(金漢琦) 등이 범어사 지방학림명정학교 학생들을 규합하여 동래 장터에서 장날을 기하여 의거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7일 졸업생 송별회에서 만세 운동을 결의하고 동래 장날인 3월 18일[음력 2월 17일]을 거사일로 잡았다.

이들은 만세 운동을 모의하기 위해 1919년 3월 18일 새벽 복천동범어사 동래포교당으로 모였으나 비밀이 누설되어 일본 헌병과 경찰의 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주요 인물들은 강제 연행되었고 나머지는 해산 당하였다. 그러나 해산 당한 18일 밤 40여 명의 명정학교범어사 지방학림 학생들은 동래읍성 서문 근방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동래 시장을 거쳐 남문까지 행진하였다. 19일에도 동래 시장 일대에서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격문을 뿌리고 만세 시위를 계속하였지만 곧 일제의 의해 검거되었다. 양춘도 역시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고 부산감옥소에서 복역하였다. 출옥 후 1937년 박무금(朴武今)과 결혼하여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상훈과 추모]

1970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금정중학교 교정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와 1995년 구서1동 동래여자고등학교 앞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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