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4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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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聖祚 |
영어음역 | Gim Seongj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성조(金聖祚)[1902~1920]는 1902년 10월 2일에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재학 중 동래 장터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동래 지역 만세 운동의 계획은 3월 7일 김귀룡(金貴龍)·엄진영(嚴進永) 등이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학생 대표에게 독립 선언서를 전해 받으면서 세우게 되었다. 특히 3월 10일 동래고등보통학교 선배이자 경성고등공업학교에 다니던 곽상훈(郭尙勳)이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곽상훈은 수학 교사 이환(李環)과 만나 독립 만세 운동을 상의하고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만세 시위의 배후에서 참모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김성조 등 시위 주동 학생들은 협의한 끝에 동래 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를 거사일로 정하고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 등을 제작하였다.
3월 13일 오후 2시가 되자 엄진영이 동래군청 앞 망미루(望美樓)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를 신호로 김성조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출동한 일본군과 기마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동료들과 함께 부산감옥소에 투옥된 김성조는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에 병을 얻어 가출옥하였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끝내 1920년 6월 16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3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