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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610
한자 黃龍河
영어음역 Hwang Yongha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사상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 동래 장터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형을 선고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19년 8월 14일 - 가출옥 석방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연표보기 - 동래 장터 3·1 운동
출생지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교|수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40지도보기
활동지 동래 장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황용하(黃龍河)는 부산광역시 사상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동래 장터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에도 전해질 즈음인 3월 7일에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학생 대표가 동래고등보통학교 4학년인 김귀룡(金貴龍)·엄진영(嚴進永)·김인호(金仁浩) 등에게 독립 선언서를 전해 주었다. 이들은 황용하 등 2·3학년 대표 학생들과 동래 의거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3월 10일 동래고등보통학교 선배이며 경성고등공업학교에 다니던 곽상훈(郭尙勳)이 독립 선언서를 수학 교사 이환(李環)에게 전해 주었고, 이들이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의거의 참모 역할을 담당하면서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황용하 등 주도 학생들은 협의를 거듭하여 동래 장날인 3월 13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고영건(高永建)의 하숙집 등에서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 등을 제작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3일 오후 2시 엄진영이 동래군청 정문에 올라가서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을 신호로, 황용하는 주변에 모여 있던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배부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 모두 출동한 일본 경찰과 수비대에게 체포되었다. 4월 30일 황용하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8월 14일 같이 복역하였던 윤삼동(尹三東), 이수열(李守烈), 엄동영(嚴東永), 김철규(金哲圭), 조주성(趙柱星), 임명조, 박임갑(朴壬甲), 손영수(孫永壽) 등과 가출옥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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