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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477
한자 金仁浩
영어음역 Gim Inh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68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3·1동지회 이사장
출생 시기/일시 1900년 2월 26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 동래 장터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58년 - 제4대 국회 의원으로 선출
몰년 시기/일시 1982년 12월 4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연표보기 - 동래 장터 3·1 운동
출생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68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68
학교|수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40지도보기
활동지 동래 장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지도보기
활동지 동래기영회 - 부산광역시 동래구지도보기
묘소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승족산 공동묘지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인호(金仁浩)[1900~1982]는 1900년 2월 26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68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일 때 동래 장터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동래 지역 3·1 운동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으로 전해지고 3월 7일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학생 대표에게 독립 선언서를 전해 받으면서 계획되었다. 이는 김인호와 동기인 김귀룡(金貴龍)·엄진영(嚴進永)·고영건(高永建)동래고등보통학교 4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2·3학년 후배들이 결합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게다가 3월 10일 동래고등보통학교 선배이자 경성고등공업학교에 다니던 곽상훈(郭尙勳)이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면서 계획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김인호 등 시위를 주도하는 학생들은 사랑방과 하숙방을 전전하면서 협의한 끝에 동래 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를 거사일로 정하였다. 김인호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3월 11일부터 13일에 걸쳐 고영건의 하숙집에서 학교 등사판을 이용하여 500여 매의 독립 선언서와 대형 독립기, 수백 매의 태극기와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는 격문도 준비하였다.

3월 13일 오후 2시를 기해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품은 학생들이 속속 모여들었으며, 이윽고 2시가 되자 엄진영이 동래군청 앞 망미루(望美樓)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를 신호로 김인호는 주동 학생들과 함께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선두에 섰고, 장터는 독립의 의기로 가득 찼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일본군과 기마경찰이 출동하여 시위 군중들을 체포하였기 시작하였고, 김인호도 이때 체포되어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1년형을 선고 받았다. 김인호는 1958년 제4대 국회 의원에 당선되어 의정 활동을 하였으며, 3·1동지회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82년 12월 4일에 사망하였다.

[묘소]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승족산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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