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375 |
---|---|
한자 | 宋銓度 |
영어음역 | Song Jeondo |
이칭/별칭 | 척파(尺波)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호는 척파(尺波). 송전도(宋銓度)[1891~1978]는 1891년 5월 24일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서 태어났다. 1904년 동래 개양학교에 입학하여 1907년 제1회로 졸업하였으며, 잠시 교편을 잡았다가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물리학교에 입학하였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공부를 중단하고 귀국하여 항일 비밀 결사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해 독립 운동을 하였다. 그 후 만주 서간도로 갔다가 베이징[北京]으로 옮겨 윤현진(尹顯振)의 도움으로 퉁저우[通州]의 협화대학(協和大學)에 입학하였다. 여기서 변영태(卞榮泰)와 교우하면서 상하이[上海]에 있는 애국 독립 단체인 동제회(同濟會)의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이때 봉천(奉天)·베이징·상하이를 오가며 각종 비밀 서류를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20년대 후반부터 길림·북간도·함경도를 오가며 활동하였는데, 함경도 쪽에서는 신간회와 『동아일보』 지국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9년 신간회 나남지회에서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1930년 2월 『동아일보』 함경북도 경성지국장을 맡아 경영하였으며 나남지국장도 맡고 있다가 1932년 1월에 그만두었다. 북간도에서는 한인학교 설립에 참여하여 우리말과 우리 역사의 보급에 노력하였다.
송전도는 1943년 귀국하였으며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위원으로 노동부장의 직책과 함께 경남·경북의 지부 결성과 지부장을 맡았다. 그리고 1945년에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하였다. 1978년 1월 31일 대구의 자택에서 87세로 별세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