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7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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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新福 |
영어음역 | Gim Sinb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17번길 17[좌천동 768-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경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신복(金新福)은 1919년에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3·1 운동 발발 직후 서울에서 학생 대표가 내려와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을 알리며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벌릴 것을 종용하였다. 김신복은 부산진일신여학교의 교사로 있던 박시연(朴時淵)와 주경애(朱敬愛)의 지휘 아래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 4학년 김반수(金班守)·심순의(沈順義)·김봉애(金奉愛)·김복선(金福善), 고등과 2학년 김난줄(金蘭茁), 고등과 1학년 이명시(李明施)·송명진(宋明進), 학년 미상 김순이(金順伊)·박정수(朴貞守) 등과 함께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1919년 3월 11일에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좌천동 거리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부산진일신여학교의 만세 시위는 부산 지역 3·1 운동의 효시이고, 일제 조선 침략의 교두보 역할을 하며 개발되었던 부산 지역이 바로 그러한 이유로 민족 모순이 가장 첨예한 현장이 되었음을 드러내는 일대 사건이었다. 김신복은 1921년 3월 부산진일신여학교를 졸업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