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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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信根 |
영어음역 | O Singe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아버지는 대지주였던 오진영(吳珍泳)이다.
[활동 사항]
오신근(吳信根)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일찍부터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비밀 결사인 기장광복회에서 활동하였다. 기장광복회에 가입한 시기가 언제였는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1917년 기장광복회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을 당시 회원으로 체포되었다. 이때 기장광복회 회장인 김약수는 도피하여 화를 면하였으나, 명정학교 교장이자 기장광복회 총무였던 박세현(朴世鉉)은 체포되어 부산형무소에서 옥사하였고, 오신근·김도엽(金度燁)·오기원(吳基元) 등 청년 10여 명도 경찰에 잡혀가서 심문을 받았다.
1919년 4월 5일 기장면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오신근은 동생 오차근과 함께 주도적으로 시위에 참여하였다. 다행히 피신한 오신근은 1921년 기장기독청년회를 구성하여 회장을 맡아 기장여자청년회와 함께 기장여자야학을 세웠으며 박공표(朴孔杓)· 오명복 등과 교육을 맡았다. 1921년 여름 대중 계몽과 교육 사상을 고취하는 목적으로 순회강연단을 조직하여 기장 지역을 순회하였다. 이들은 순회강연에서 현 시대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급선무임을 강조하였다. 그 결과 강습소와 야학교 등이 각 지역에 개설되었다.
청년회 활동과 함께 노동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다. 1922년 11월 8일 기장 유지들의 발의로 동부리노동야학에서 기장노농혁신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회장은 권호창(權皓昌)이 맡았고 오신근은 총무를 맡아 활동하였다. 기장노농혁신회는 한계는 있었지만 이전의 청년 단체가 계몽 활동을 주요 사업으로 한 것과 달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계급 의식을 환기시키는 활동에 주안점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