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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노동혁신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774
한자 機張勞動革新會
영어의미역 Gijang Labor Innovation Group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 운동 단체
설립자 권호창
설립 시기/일시 1922년 11월 8일연표보기 - 기장노동혁신회 창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3년 5월 - 제1회 정기 총회 개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3년 - 기장구락부, 기장여자청년회 등과 함께 소비 절약과 토산 장려 선전 강연회 개최
최초 설립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의]

1920년대 부산 기장 지역에 있었던 노동 운동 단체.

[설립 목적]

기장노동혁신회는 기장 지역 무산대중의 권익 확보를 위한 통합 단결 도모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22년 11월 8일 기장 유지들의 발의로 동부리 노동 야학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임원으로는 회장 권호창(權皓昌), 총무 오신근(吳信根), 덕육부 위원 김생수(金生水), 지육부 위원 겸 서기 박일형(朴日馨), 농사부 위원 최신오(崔信五), 회계 이임득(李任得), 간사 이봉해·정석민 등이 선임되었고, 회원은 50명이었다. 농사부 회원은 소작농이었다. 1923년 5월 제1회 총회에서 회장제를 집행 위원제로 변경하고, 집행 위원장으로 이규옥, 집행 위원으로 권호창, 김생수, 권종철, 최우일, 구일심, 박재표, 김두철을 선출하였다. 기장노동혁신회의 해체 일자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농사부의 활동은 1926년 창립되는 기장노농회로 계승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일반 청년 단체가 계몽적 활동을 주요 사업으로 한 것과 달리 기장노동혁신회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계급 의식을 환기시키는 활동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지·덕·체를 강조하는 문화 운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으며, 1923년 물산 장려 운동에 동참하여 기장구락부, 기장여자청년회 등과 함께 소비 절약과 토산 장려 선전 강연회를 열었다.

[의의와 평가]

기장노동혁신회는 문화 운동을 중심으로 삼고 있던 기존의 청년 단체와 차별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1922년 들어 기장 지역에서도 민족주의 운동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분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체이다. 기장노동혁신회에서 활동한 인물들이 이후 기장 지역의 사회 운동을 주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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