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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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機張女子靑年會 |
영어의미역 | Gijang Young Women's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기장 지역에 있었던 여성 청년 운동 단체.
[설립 목적]
기장여자청년회는 3·1 운동 이후 여성 계몽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지·덕·체 삼육의 발달과 교육의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변천]
기장여자청년회는 1921년 9월 권은해(權銀海)의 발의로 결성되었다. 첫 회장은 박차순이고, 총무는 오경원(吳庚元)이었다. 처음 기장여자청년회의 활동은 야학 운영을 통한 교육의 보급과 계몽 활동을 주 내용으로 하는 문화 운동 청년 단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23년 3월 2일 금성예배당에서 제5회 정기 총회를 열고 임원진을 개선하였다. 이때 오경원을 회장으로, 김정순(金貞順)과 박경상(朴敬相)을 총무로 선출하고, 이외에 서기, 회계, 덕육부장, 지덕부장, 체육부장 등을 선출하였다. 1924년 2월 9일 제6회 정기 총회에서 회장 오경원, 총무 김정순·박경상, 서기 오주숙(吳珠淑)이 선출되었다.
1925년 중반~1926년 기장여자청년회는 전환점을 맞았다. 이는 사회주의 사상이 보급되면서 청년 운동의 성격이 변화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기장여자청년회의 사업도 교육과 계몽을 위주로 하던 것에서 조선 여성의 특수성을 살린 성별 조직론에 입각하여 여성을 조직화 하는 것으로 중심을 전환하였다. 이에 맞추어 기장여자청년회는 1925년 11월 22일 결성된 동래청년연맹에 가입하였다. 이후 기장여자청년회는 청년 운동 내의 여성 청년 단체로서 동래청년연맹의 세포 단체라는 위상과 함께, 다른 청년 단체나 사상 단체와의 협력 속에서 여성 운동을 수행하였다. 1926년 12월 당시 회원은 95명이고 회장은 김정순이었다. 1928년 7월 기장여자청년회는 기장정진청년회 여자부와 함께 조직을 해소하고, 근우회 동래지회 기장분회를 창립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기장여자청년회는 기장기독청년회와 함께 여자 야학을 운영하였다. 1923년 3월 제5회 정기 총회에서 덕육부장, 지덕부장, 체육부장 등을 두고 지·덕·체 삼육의 발달에 힘썼다. 소비 절약과 토산 장려 관련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기장여자야학교의 명칭을 정화여자야학교로 바꾸고 독자적으로 운영하였다.
[의의와 평가]
기장여자청년회는 기장면 3·1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단체로서, 1920년대 기장 지역 여성 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