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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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尙勳 |
영어음역 | Choe Sangh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변봉금(卞鳳今)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부산에서 독립운동을 한 최천택(崔天澤)이 5촌 조카이다.
[활동 사항]
최상훈(崔尙勳)[1868~?]은 1868년에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한학을 배웠으며 26세 때 관내 부주사가 되었다. 이후 한성의 일어 학교를 졸업한 후 통역관으로 선발되어 일본의 육군 대장 우에하라 겐타로[上原元太郞]의 통역을 맡게 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우에하라 겐타로가 만주 주둔군 사령관으로 전임되자 그를 따라 아내인 변봉금과 함께 만주로 가게 되었다.
1909년 10월 26일에 있었던 안중근(安重根)의 거사에 충격을 받고 때를 기다리던 중 1910년 국권 강탈의 소식을 전해 듣고 그 길로 길림 등 동북 만주와 시베리아의 한인 부락으로 가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하고 합류하였다. 1919년 북간도의 군사 단체인 의군부 헌병 대장으로 임명되었고 북로군정서에서 이범석(李範奭)과 함께 사관 학교 교관으로 임명되었다. 그 후 약 10년간 만주 항일 전선에서 분투하다 시베리아 치타 지방 여행 중 일본 밀정에 의해 암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