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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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世基 |
영어음역 | Yi Seg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진시장로 19-7[범일동 652-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세기(李世基)[1923~1976]는 1923년 10월 23일에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1265-1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에 일명 노다이[乃台] 사건으로 불리는 부산 항일 학생 의거에 참여하였다. 이세기를 비롯한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들은 1940년 11월 23일 부산 공설 운동장에서 열린 이른바 제2회 경상남도 학도 전력 증강 국방 경기 대회에 참가하였다. 이 대회에서 일본인 심판관들은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의 우승을 막기 위해 승부를 조작하였고, 그 결과 일본인 학교가 우승을 차지하였다.
부당한 승부 조작에 분노한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들과 동래중학교 학생들은 심판진의 편파적인 판정에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그리고 「아리랑」, 「도라지」 등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노래를 부르고 ‘조선 독립 만세’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더욱이 시위 학생들은 대회 심판장을 맡았던 일본군 대좌(大佐) 노다이의 관사를 습격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때 이세기는 관사 습격에 앞장섰다.
학생들의 시위와 노다이 관사 습격 소식은 곧바로 일본 경찰에 전달되었고, 출동한 경찰과 헌병에 의해 학생 2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 가운데 주동자로 지목된 11명이 기소되었으며, 이때 이세기도 체포되어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고 기소되었다. 1941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6년 1월 3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