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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340
한자 黃鶴東
영어음역 Hwang Hakdong
분야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청룡초등학교 교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범어사 3·1 운동에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부산감옥소에 수감
추모 시기/일시 1970년 -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 건립
출생지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울주군 동면 방어진]
활동지 금정중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385지도보기
활동지 부산감옥소 -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관련 유적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1970] -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385 금정중학교 교정지도보기
관련 유적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1995] -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1동 동래여자고등학교 앞

[정의]

1919년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황학동(黃鶴東)울주군 동면 방어진[현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에서 태어났다. 황학동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벌어졌을 때 부산에서도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 등 7명이 참가하였는데, 이들이 돌아와 범어사 명정학교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동을 계획하였다. 애초 이들은 동래 장날인 3월 18일에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명정학교 학생 오계운이 이러한 사실을 누설하여, 3월 18일 새벽 동래구 복천동범어사 동래포교당에서 주모자 상당수가 체포되었다.

3월 18일 밤, 검거를 피한 40여 명의 범어사 명정학교범어사 지방학림 학생들은 동래읍 서문 근방에서부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동래 시장을 거쳐 남문까지 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9일에도 이들은 동래 시장 일대에서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격문을 뿌리고 만세 시위를 계속하였다. 황학동도 이때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부산감옥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였다. 출옥 이후, 황학동명정학교를 잇는 청룡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0년 금정중학교 교정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와 1995년 금정구 구서1동 동래여자고등학교 앞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에 이름이 새겨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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