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339 |
---|---|
한자 | 崔應觀 |
영어음역 | Choe Eunggwan |
분야 |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응관(崔應觀)은 함경남도 안변군에서 태어났으며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부산 범어사 지방학림을 졸업한 뒤 범어사(梵魚寺)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부산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 등 7명도 참가하였다. 이들 7명이 돌아와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동을 계획하였다. 애초 동래 장날인 3월 18일에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명정학교 학생 오계운이 이러한 사실을 누설하여, 18일 새벽 복천동의 범어사 동래포교당에서 주모자 상당수가 체포되었다.
18일 새벽에 검거를 피한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 학생 40여 명은 18일 밤 동래읍성 서문 근방에서부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동래 시장을 거쳐 동래읍성 남문까지 시위를 전개했다. 19일에도 이들은 동래 시장 일대에서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격문을 뿌리고 만세 시위를 계속하였다. 최응관도 이때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이 때문에 다른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대구감옥소에서 6개월 동안 복역하였다. 출옥 후 일본 구택대학(駒澤大學) 인문학과(人文學科)에서 수학하고,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 전임 강사를 지냈다.
[상훈과 추모]
1970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금정중학교 교정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와 1995년 구서1동 동래여자고등학교 앞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