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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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勤培 |
영어음역 | Gim Geunbae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서용태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근배(金勤培)[1912~1968]는 1912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민족 차별 정책에 대한 불만이 점차 고조되어 가던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의 충돌에 의해 광주 항일 학생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분위기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1919년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민족 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김근배는 김해 지역에서 항일 학생 운동을 주도하였다.
일제 강점기 김해 지역은 농산물의 집산지로 일찍부터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농민들의 항일 의식이 어느 곳보다 강하였다. 광주 항일 학생 운동이 일어나자 김해공립농업학교[구 김해농업고등학교, 현 김해생명과학고등학교] 학생 전원이 김해경찰서 앞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항일 시위를 벌였다. 당시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근배가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근배는 이로 인하여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을 당하였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였다. 이후 일제 사법 당국의 요시찰 인물로 주목 받아 농사에만 전념하다가 1945년 8월 조국의 해방을 맞이하였다.
해방 이후 김해농업고등학교와 동창회는 김근배의 항일 정신을 기려 졸업생으로 인정하고 졸업증을 수여하였다. 김근배는 1947년 김해수리조합 강동지구[당시 덕도지구] 창설 위원으로 선임되어 김해 지역 농촌 진흥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이후 김해수리조합 강동지구의 1대·2대·3대·4대 평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유한 회사인 정부 양곡 도정 공장의 지배인으로 근무하였다. 성품이 호탕하였고 지역 발전과 봉사에 앞장섰으며 1968년에 57세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