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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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順南 |
영어음역 | Hong Sunnam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송희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홍순남(洪順南)은 경상남도 거제시 출신이다. 홍순남이 부산의 여성 운동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은 1928년 6월 결성된 근우회 부산지회이다. 근우회 부산지회에서 준비 위원으로 설립에 관여하였다. 근우회 부산지회에서 표면적 직책을 갖지는 않았지만 영향력이 있었다.
홍순남의 활동은 해방 공간에서 두드러졌다. 1945년 12월 17일 초량의 보수원(寶壽院)에서 개최된 부산부녀동맹 결성식에서 “우리 부녀들은 일치단결하여 조선의 완전 독립에 전력하며, 따라서 부인의 자유를 획득하자.”는 인사말을 하였다. 부산부녀동맹 결성식에는 200여 명의 여성과 경남도인민위원회 노백용(盧百容), 부산시인민위원회 강대홍(姜大洪)도 참석하였다.
1946년 2월 23일 조선부녀동맹 경남총지부 결성식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조선부녀동맹 경남총지부 결성식에는 경상남도 19개 군 대표와 부산의 동맹원 외 1,000여 명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 날 부위원장으로 권복해(權福海), 위원으로 노남교·최복순·최금남 등이 선출되었다. 결성식에서는 조직 선전과 문맹 퇴치, 생활 개선, 식량 문제, 3·1 운동 기념, 협동조합 등이 논의되었다. 강령으로는 ‘조선 여성의 정치적·경제적 해방을 기함, 조선 여성은 단결을 공고히 하여 완전한 독립 국가 건설에 일익이 되기로 함, 조선 여성의 의식적 계몽과 질적 향상을 기함’ 등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후 진행된 노선 갈등 속에서 홍순남은 위원장에서 물러났고, 권은해(權銀海)가 그 뒤를 이어 위원장직을 수행하였다. 홍순남은 박헌영(朴憲永)에 반대하는 파로서, 남로당 계열에 반대하였고 남로당 결성 이후 사회노동당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홍순남은 1947년 중반 인민해방군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인민해방군 사건은 북한의 북로당 남조선특별위원회의 지도 아래 단독 정부 수립과 분단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무장 투쟁 조직과 남한 군대 침투를 준비하던 조직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후의 활동은 알려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