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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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永柱 |
영어음역 | Gim Yeongj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 460[좌천동 45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영주(金永柱)[1896~1930]는 1896년 9월 17일에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박재혁(朴載赫)의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에 참여하였다. 박재혁은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의열단(義烈團) 단장 김원봉(金元鳳)으로부터 부산경찰서를 응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부산경찰서는 1920년 3월 의열단이 감행하였다가 실패한 진영·밀양 폭탄 사건 이후 의열단의 색출과 탄압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김영주는 1920년 9월 상해에서 돌아온 박재혁으로부터 김원봉 단장의 지시를 전해 들었다. 평소 항일 의식이 투철하였던 김영주는 박재혁, 최천택(崔天澤), 오택(吳澤) 등과 함께 거사에 동참하였다. 이들은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橋本秀平]가 고서적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박재혁이 중국 고서 상인으로 위장하여 접근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의 예상이 적중하여, 9월 14일 박재혁은 부산경찰서장실에서 하시모토에게 폭탄을 투척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일로 하시모토는 중상을 입었으며 오래지 않아 사망하였다. 그러나 이때 김영주 역시 부상을 당하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1930년 1월 1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6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