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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388
한자 金仁柱
영어음역 Gim Inj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종교/기독교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종교인
성별
대표경력 영주교회 집사
출생 시기/일시 1893년 9월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부산 영주교회 집사로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36년 - 상해 임시 정부에 일본군 관련 정보 제공
활동 시기/일시 1943년 - 이웃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됨
활동 시기/일시 1943년 12월 13일 - 징역 4월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44년 4월연표보기 - 김인주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활동지 부산 영주교회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인주(金仁柱)[1893~1944]는 1893년 9월에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에 감화를 받아 교인이 되었으며 1920년 부산 영주교회에서 집사로 선출되었다. 민족주의 운동에 앞장섰던 당시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김인주는 교인들에게 민족의식과 항일 독립 의식을 고취하였다.

1936년에 김인주는 상해 임시 정부의 지령을 받고 국내 첩보 연락원으로 파견된 홍보산과 접촉하였다. 당시 일본군을 상대로 탄목 장사를 하고 있었기에 일본군의 활동과 관련된 정보를 쉽게 수집할 수 있었으며 군수 물자 정보를 홍보산에게 제공하였다. 또한 홍보산의 지령에 따라 지하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부산 영주교회에서 지속적으로 항일 독립을 위한 기도와 계몽 활동을 하던 중 1943년 이웃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다. 김인주는 12월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4월형을 선고 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4월에 옥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 표창, 1991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부산영주교회는 일제강점기의 명칭인 부산 '영주동교회'로 고치는 것이 어떨지?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부터는 상해를 떠나 이동했으므로 1936년 '상해 임시정부'는 '중국에 있던 임시정부'로 수정하는 것이 이떤지?
  • 답변
  • 부산역사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가보훈처 공훈록에는 영주교회로 나와있습니다. 영주동교회라는 명칭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알려주시면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상해임시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동의어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고유명사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1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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