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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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亘祥 |
영어음역 | O Geungsang |
이칭/별칭 | 오점술 |
분야 |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오긍상(吳亘祥)[1899~?]은 1899년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사창리에서 태어났다. 오점술로도 불리었으며, 일찍이 범어사(梵魚寺)에 출가하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당시 21세로 범어사 지방학림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범어사의 대표 7명이 서울 의거에 참가하고 돌아와서 학생 의거를 동래 장날인 3월 18일 일으킬 것을 결의하자 오긍상도 적극 참여하였다.
18일 새벽, 비밀이 누설되어 일부 주동자들이 체포되었다. 하지만 오긍상을 비롯한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의 학생들은 18일과 19일 동래 시장 인근에서 격문을 뿌리고 만세 운동을 계속 하였다. 그러나 곧 많은 참가자들이 체포되어 부산감옥소에 투옥되었다. 오긍상도 이때 체포되어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출옥 후 서울의 휘문고등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범어사로 돌아와서 금정중학교 교사, 포교사, 범어사 말사 주지 및 재무직을 지내며 불교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0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금정중학교 교정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와 1995년 구서1동 동래여자고등학교 앞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