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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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容善 |
영어음역 | Bak Yongseon |
이칭/별칭 | 박광선(朴光善),박광일(朴光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규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용선(朴容善)[1904~?]은 1904년 동래군 기장면 대라리[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에서 태어났다. 기장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25년 9월 동래고등보통학교 공사비를 기부하기도 하였다. 같은 기장면 출신인 김두봉(金斗奉), 김도엽(金度燁) 등과 함께 어울리며 항일 의식을 키웠다.
1924년 사상 단체 북풍회에 가입하였으며, 1925년 11월 김도엽과 함께 만주로 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하여 1929년에 졸업하였다. 이때부터 본명이 아닌 박광선(朴光善) 또는 박광일(朴光一)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1930년 1월 조선공산당 재건 활동 임무를 띠고 귀국하여 동래에서 혁명적 노조 운동과 당 재건 운동을 하다가 검거되어, 1931년 10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33년 10월에 출옥하였다.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에는 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 결성에 참여하여 조직 부장으로 선임되었다. 1945년 9월 11일 조선공산당 경남도위원장이 되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 대회에서 중앙 위원으로 선임되었고, 조선공산당 중앙 및 도당 대표 동지 연석회의에 참가하여 즉각적인 당 대회를 개최하도록 중앙 지도부에 요구하였다. 3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남지부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가서 1955년 3월 소련·조선 문화협회 서기장, 5월 소련·조선 문화협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58년 5월 북한·아시아·아프리카 연대성위원회 부위원장, 1960년 5월 북한·소련 친선협회 대표 단장으로 소련 노동절 기념식에 참가하였다. 1972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5기 대의원으로 활동하였다. 현재까지 북한에서 생존해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