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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488
한자 朴壬甲
영어음역 Bak Imgap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한독당 양산지부장
출생 시기/일시 1902년 3월 18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 동래 장터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징역 4월형을 선고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정미소 경영
활동 시기/일시 1930년 - 동래고등보통학교 서무담당 겸 수학 교사로 재직
몰년 시기/일시 1990년 11월 7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4년 3월 12일 - 애국지사 월성 박씨 박공임갑 기적비 건립
관련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연표보기 - 동래 장터 3·1 운동
출생지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384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학교|수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40지도보기
활동지 동래 장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지도보기
활동지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
활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40지도보기
활동지 양산산업조합 - 경상남도 양산시
활동지 한독당 양산지부 - 경상남도 양산시
묘소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
기념비 박임갑 기적비 -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2동 산19-3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월성. 아버지는 박도전(朴道銓)이고, 어머니는 문지순(文池順)이다.

[활동 사항]

박임갑(朴壬甲)[1902~1990]은 1902년 3월 18일에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384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으로 전해질 무렵인 3월 7일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의 학생 대표가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왔다. 박임갑김귀룡(金貴龍)·엄진영(嚴進永) 등과 함께 이들을 맞아 동래 지역의 3·1 운동을 전개할 계획을 세웠다.

이어 박임갑김귀룡·엄진영·고영건(高永建)·김인호(金仁浩)·이상덕(李相德)·박득룡(朴得龍)·윤삼동(尹三東) 등과 구체적으로 계획을 짰다. 그러던 중 3월 10일 동래고등보통학교 선배이자 경성고등공업학교에 다니던 곽상훈(郭尙勳)이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여 수학 교사 이환(李環)을 만나 독립 만세 운동을 상의하였고, 이들이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의거의 참모 역할을 담당하면서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박임갑엄진영·오종식(吳宗植) 등의 집과 정종호(鄭宗浩)·백정기(白正基)·고영건의 하숙방에서 협의한 끝에 동래 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를 거사일로 정하였다. 박임갑은 3월 11일부터 13일에 걸쳐 고영건의 하숙집에서 학교 등사판을 이용하여 500여 매의 독립 선언서와 대형 독립기, 수백 매의 태극기와 고종 황제의 독살을 폭로하는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는 격문도 준비하였다.

3월 13일 오후 2시가 되자 엄진영이 동래군청 앞 망미루(望美樓)에 올라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박임갑이 다른 주동 학생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자 모여 있던 장꾼들도 호응하여 장터는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기마경찰 20~39명과 수비대 50여 명이 출동하여 야만적인 발포를 하며 닥치는 대로 군중을 체포하였다. 박임갑도 다른 주동 학생들과 함께 체포되었으며,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4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른 후 출옥하였다.

박임갑은 1921년 양서경(梁瑞慶)과 결혼하여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에서 정미소를 경영하였다. 1930년에 모교인 동래고등보통학교에서 서무 담당 겸 수학 교사로 근무하다가,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진학하여 방적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양산산업조합에 취업하였다. 해방 후 한독당 양산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또한 월성 박씨 동래 문중은 1994년 3월 12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2동 산19-3번지박임갑 기적비를 세워 추모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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