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
-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가야금 연주자. 강문득(姜文得)[1945~2003]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원서동에서 강장원과 임유앵 사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판소리 명창이었다. 특히 아버지 강장원은 국립국악원에서 후학을 지도하였고, 이모인 임춘앵은 국극의 여왕으로 불렸다. 4살 때 왼쪽 다리에 장애가 생겨 평생 다리를 절었다. 5세부터는 임유앵이 소속된 국극...
-
1970년 이후 부산에서 활동한 시나위더늠 대금산조를 만든 명인 강백천은 1898년 전라남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대금 시나위를 잘 불었다. 1914년 박준필에게 대금으로 풍류를 익힌 후 남도 시나위 가락에 심취했다. 대금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정악합주를 주로 연주하는 풍류젓대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무속음악(시나위)이나 산조를 연주하기 위한 시나위젓대이...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강태홍류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 호는 효산(曉山). 아버지는 강용안(姜用安)이고, 어머니는 정가매(鄭佳梅)이다. 별칭은 강태평(姜太平)이다. 강태홍(姜太弘)[1893~1957]은 1893년 3월 21일 전라남도 무안군 외읍면 교촌리 664번지[현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교촌리 664]에서 4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강용안은...
-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가야금 연주자. 구연우(具演祐)[1936~1984]의 본명은 구기홍이다.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예능에 소질이 있었고, 1954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부산으로 이주한 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부산에 살던 강태홍(姜太弘)에게 가야금을 사사하였다. 1950년 후반 상경한 후 김윤덕 문하에서 거문고를 사사하고, 1960년 전국 신인...
-
현대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활동한 국악학자이자 지휘자이며 교수. 김길운(金吉雲)[1946~2005]은 본관이 김해(金海)이며, 서울에서 태어났다. 1959년 3월 1일~1965년 2월 10일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에서 수학하였고, 1966년 3월 1일~1970년 2월 26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학과에서 피리를 전공하였다. 1970년 국립국악원 장악과 연구실 연구...
-
현대 부산 출신의 거문고 연주자. 김대현(金大炫)의 호는 현당(玄堂)이다. 김대현에 관한 자료는 「이보형 채록 향제 줄풍류」 음반의 설명 자료와 『경상남도지』[경상남도지편찬위원회, 1977]에 약간만 있을 뿐, 부산 국악계에도 알려져 있지 않을 정도로 잊힌 국악인이다. 음반 자료에는 “김대현은 1903년 출생으로 부산 동래에서 살았다. 23세 때 거문고의 대가인 김경남(...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김병호류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금암(錦岩). 아버지는 김기봉이고, 어머니는 박연례이다. 금바우·김금암(金錦岩) 등으로도 불리었다. 김병호(金炳昊)[1910~1968]는 1910년 11월 5일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기봉은 대금에 능하였으며, 어머니 박연례는 소리에 능하였다. 또...
-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율객. 장사훈의 『국악 입문』[세광출판사, 1983]에 신창휴(申昌休)[1892~1969]는 “구한말 이래의 율객(律客)으로 경주(慶州) 태생이다. 경주·대구·부산을 위시하여 경상도 일대의 율방에서 율방으로 일생을 전전하며 거문고와 양금·해금에 전부를 바치고 정악으로 일관한 명인이니 그 제자만도 수없이 많다”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보형 채록 향제...
민속 예술인
-
현대 부산 「수영 야류」의 할미 역 기·예능 보유자. 김귀수(金貴秀)[1909~1977]는 1909년 11월 8일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확실하지 않다. 1925년 부산동래공립보통학교[현 내성초등학교]를 마치고, 부산상업실천학교[구 동주여자상업고등학교, 현 동주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927년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생활하다가, 1945년 8·15 광복을...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동해안 별신굿」 예능 보유자. 본관은 김해. 김석출(金石出)[1922~2005]은 1922년 2월 29일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환호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성수, 어머니는 이선옥이다. 할아버지는 김천득이고, 할머니는 이옥분, 큰아버지는 김범수, 맏형은 김호출 등이며 가계 내 많은 식구들이 무당이었고, 이들을 통하여 무업을 학습하였다. 16세에...
-
일제 강점기 「동래 야류」 연희자. 김수호(金壽浩)는 1882년에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기옥(基玉)이다. 조선 말 동래부에 있던 여러 무청(武廳) 중 하나인 작대청(作隊廳)의 백총(百摠)을 역임한 무임이었다. 동래 지역의 이서층(吏胥層)과 무임층(武任層)이 관직에서 물러나 조직한 모임인 동래기영회(東萊耆英會)에는 가입하지 않았으나 동래기영회 회원 또는...
-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7호 다대포 후리소리 예능 보유자. 김암우(金岩牛)[1927~1997]는 1927년 11월 14일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에서 태어났다. 10대 중반에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으로 이주하였다가, 운수면 봉평동으로 이사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0년대 후반에 부산광역시 사하구로 이주하여 지역민들과 함께 다대포 후리소리를 발굴하여 재현하였다. 19...
-
현대 부산과 울산 지역에서 활동한 세습 무속인. 김영달(金永達)1922~1984]은 부산 동래에서 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승적을 가진 세습무로,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거주하면서 부산 일대에 단골판[단골판은 자연 마을 단위로 구획되어, ‘단골’ 한 사람이 5~10개 마을, 500호~1,000호의 집을 관할하여 자기의 ‘단골판’ 안에 사는 주민들이 요청하면 언제든지...
-
현대 부산 「수영 야류」의 말뚝이 역 기·예능 보유자. 김용태(金容泰)[1922~1995]는 1922년 8월 13일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알 수 없다. 김용태가 「수영 야류」[수영 들놀음]의 공연에 참가하기 시작한 때는 1960년대였는데, 이때 「수영 야류」의 복원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들놀음이라 불리는 야류(野遊)는 낙동강 서쪽의 「가락 오광대」와 더불어 낙동강...
-
부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동해안 별신굿」 예능 보유자. 김유선(金有善)[1932~2010]은 강원도 강릉시 안인읍[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에서 태어나 할머니 밑에서 유복자로 자랐다. 김유선은 17세 때인 1949년 「동해안 별신굿」에 입문하였다. 주로 무녀역할을 맡았는데, 만능 재주꾼인 무녀의 캐릭터에 맞게 다양한 춤과 노래, 연기에 악기 연주까지 관...
-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3호 사기장. 김윤태(金允泰)[1936~2012]는 경상북도 문경군 동로면 적성리에서 할아버지[김상희] 때부터 가마를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가마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장난 외에는 특별한 놀이가 없었을 정도로 도자기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아버지 김종원이 일찍 사망하여 어릴 때부터 숙부인...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부산 농악」 상쇠 예능 보유자. 김한순(金漢淳)[1936~2006]은 1936년에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하였다. 1955년 전라북도 남원의 실상사로 출가한 뒤에 1963년 대한불교 대성종을 창건해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대성사의 주지를 맡았다. 한국불교전통문화예술원 원장, 대한불교 원효종 부산교구 총무원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김한순은 부산...
-
현대 부산 「수영 야류」의 양반 역 기·예능 보유자. 노영규(盧泳奎)는 1919년 10월 15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수영공립보통학교[현 수영초등학교]에 입학해 1933년 졸업한 것으로 여겨진다. 들놀음이라 불리는 야류(野遊)는 낙동강 서쪽의 「가락 오광대」와 더불어 낙동강 남부 일대에서 성행하던 민속 가면극으로, 이 가운데 「수영 야류」[「수영 들놀음」]는 「동래 야류」...
-
부산광역시 출신의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 노진규(盧振奎)[1904~1981]는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태어나서 자란 토박이로, 이곳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학도 4년간 배웠다. 생업으로 약종상을 경영하면서 향토 예능인 「동래 야류」를 연희하고 그 전승에 힘썼다. 주로 양반 역을 맡았으며,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의원 역도 함께 맡아 관중의 웃음을 자아내었다....
-
국가 무형 문화재 제18호 「동래 야류」 원양반과 가면 제작 보유자. 문장원(文章垣)은 1917년 5월 11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남평(南坪)이며, 호는 소암(素岩)이다. 아버지는 문무일이며, 어머니는 구남이다. 1931년 동래제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2년 동래강습학술소 고등과를 수료한 후, 동래음악동우회에 참가하였다. 1...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 박덕업(朴德業)[1890~1972]은 1890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서 태어났다. 1903년 14세가 되던 해에 당시 동래 장터에서 열렸던 정월 대보름 잔치인 줄다리기 판에 놀러 나갔다가 「동래 야류」를 접하고 이때부터 탈놀이에 매료되었다. 동네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잔심부름도 하고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틈틈...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 박점실(朴點實)[1913~1998]은 1913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나, 합천군 삼가면에서 성장하였다. 15세 때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로 가 규슈[九州] 지역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머물렀으며, 17세 때는 중국 둥베이[東北]의 하얼빈[哈爾濱]으로 가 말을 타기도 하는 등 젊은 시절에는 방황의 시간을 보냈...
-
부산 출신의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 본관은 원주. 아버지는 변재익이고, 어머니는 임소연이다. 부인인 배영희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다. 변동식(邊同植)[1923~1999]은 1923년 2월 28일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에서 태어났다. 동래제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래공립중학교를 중퇴하였다. 부산철도공작창에 재직하다가, 1968년 9월 10일 부산민...
-
부산 지역에 전승되어 온 구포 대리 지신밟기의 재현자이자 소리꾼. 손운택(孫雲澤)[1936~1999]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근계리 곤실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손석륜은 방앗간을 경영하면서 안강읍에 빙과류 공장·가구 제작 공장을 경영하는 지역 유지였다. 손운택은 7남매 가운데 차남이었다. 집안에 머슴이 둘 있었는데, 이 가운데 큰 머슴인 김정달(金定達)이...
-
부산 출신의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 신우언(辛祐彦)[1899~1980]은 대부분의 「동래 야류」 전승자들과 마찬가지로 동래 출신이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래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명륜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45년까지 생업으로 잡화상을 경영하였으며, 1949년에는 동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1969년 사단법인 부산민속예술보존회의 연출 및 지휘자로 선...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중요 무형 문화재 제18호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 양세주(梁世珠)[1922~1988]는 1922년에 부산동래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로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1930년 중반까지 매년 전승되던 「동래 야류」를 관람하였으며, 「동래 야류」를 쫓아다니며 꽹과리를 쳤고 동래 지역의 당제 등을 구경하며 전통 예능을 가까이서 접하였다. 1...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부산 농악」의 명인. 유삼용(柳三龍)[1898~1970]은 1930년대까지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지역에서 농악대 활동을 하였다. 이후 1930년대 말부터 8·15 광복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일제하의 민족 말살 정책으로 농악대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광복 후 유삼용을 단장으로 15명 내외의 인원이 모여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에서...
-
부산 출신의 「수영 야류」 예능 보유자. 윤수만(尹守萬)[1916~2008]은 1916년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동에서 출생하여 수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농업기능원양성소를 수료하고, 1931년부터는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한때 건재업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 말에는 부산수영구 지역에 전승되어 오던 「수영 야류」를 몇몇 사람들이 모여 복원하...
-
부산 출신의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 아내 김순이와의 사이에 이정숙·이정애·이정자·이석금·이천우 등 5명의 자녀를 두었고, 재혼하여 이윤홍과의 사이에 이장우를 두었다. 이남선(李南先)[1912~1981]은 1912년 6월 7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래 야류」의 초창기 멤버로 동래 지역의 토박이였다.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
1950년대 이후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부산 「아미 농악」의 창시자. 이명철(李明哲)[?~1973]은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후퇴 때 식솔들을 거느리고 부산의 피난민촌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에 정착하였다. 이명철은 이곳에 고물상을 열고, 아미동과 대신동을 중심으로 풍물을 잘하는 사람들을 모아 걸립패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이후 전국을...
-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농악 예술인. 이용식(李容植)은 1948년 12월 25일 충청북도 영동군의 이명철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한 해 뒤인 1951년 1·4 후퇴 때 아버지를 따라 부산광역시 서구의 피난민촌인 아미동에 정착하였다. 이후 아미동을 떠나지 않았으니, 부산의 아미동에서 거의 평생을 산 셈이다. 이용식의 아버지 이명철[19...
-
개항기 동래부에서 활동한 무임. 이홍욱(李洪昱)은 본관이 연안(延安)이며, 자는 영칠(英七)이다. 1876년에 태어났으며, 조선 말 동래부의 무청(武廳)인 장관청(將官廳)의 파총(把摠)과 초관(哨官), 작대청(作隊廳)의 백총(百摠)을 역임한 무임(武任)이다. 1902년에는 통신사(通信司) 전화과의 주사(主事)에 임명되어, 이후 경력에는 전(前) 주사라는 명칭이 많이 나타...
-
현대 부산 「수영 야류」의 양반 역 기·예능 보유자. 정시덕(鄭時德)은 1894년 3월 17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동명학교에 입학하여 수료하였다. 정시덕은 자신보다 두 살 위인 조두영(趙斗榮)[1892~1964]에게서 「수영 야류」[「수영 들놀음」]를 배웠는데, 조두영은 훗날 「수영 야류」 말뚝이춤의 명인이 된 인물이다. 이후 조두영,...
-
부산 수영야류[수영들놀음]의 가면 제작 기예능 보유자 조덕주는 1914년 2월 3일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에서, 수영야류의 복원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말뚝이 춤의 명인 조두영(趙斗榮)[1892~1964]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조덕칠(趙德七)[1932~1995]은 말뚝이 역을 맡아 기예능 보유자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수영야류의 기예능 보유자...
-
현대 부산 「수영 야류」의 말뚝이춤의 명인. 조두영(趙斗榮)은 본관이 함안(咸安)이며, 1892년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들을 비롯하여, 수영동에 거주하는 함안 조씨(咸安趙氏) 일가에서는 「수영 야류」[수영 들놀음]의 명인이 다수 배출되었다. 「수영 야류」의 가면인 수영 탈 제작의 기·예능 보유자인 조덕주(趙德周)[1914~1983]는 조두영의 장...
-
현대 부산 「수영 야류」의 악사 기·예능 보유자. 조복준(趙福俊)은 본관이 함안(咸安)이며, 1920년 8월 3일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서 태어났다. 「수영 야류」[수영 들놀음]의 말뚝이 역 기·예능 보유자인 조재준(趙在俊)[1906~1974]의 동생이다. 「수영 야류」의 복원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말뚝이 춤의 명인 조두영(趙斗榮)[1892~1964]은 조복준 형제의...
-
부산 수영야류(수영들놀음)의 말뚝이역 기예능 보유자 조재준은 1906년 5월 6일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에서 태어났다. 수영야류의 악사 기예능 보유자인 조복준(趙福俊)[1920~1966]의 친형이고, 수영야류의 복원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말뚝이 춤의 명인 조두영(趙斗榮)[1892~1964]은 조재준의 일가 숙부이다. 조두영의 장남으로 수영 탈 제작의...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이자 화가, 연극인. 천재동(千在東)[1915~2007]은 경상남도 울산군 방어진[현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에서 태어나 남목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 도쿄[東京] 가와바타미술학교의 소묘과를 수료하고, 조교를 지내다가 같은 학교 특설 인체과를 중퇴하였다. 해방되기 2년 전인 1943년 11월에 귀국하여 1944년 서...
-
현대 부산 「수영 야류」의 양반 역 기·예능 보유자 태명준(太命俊)은 1904년 10월 20일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서 수영 토박이인 태두문(太斗文)[1852~1930]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고에 능한 아버지의 영향 아래서, 태명준의 세 형제는 모두 「수영 야류」[수영 들놀음]의 예능인으로 성장하였다. 큰형인 태성준(太成俊)[1892~1947]은 꽹과리에 능하였...
음악가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피아니스트. 강수범(姜壽範)[1920~1997]은 1920년 11월 17일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1940년 대구의 계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東京]의 명문 대학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상과에서 3년간 공부하였다. 해방 후인 1945년 말 강수범은 금수현(金守賢)이 주도하고 부산의 음악 교사들로 구성된...
-
부산 출신의 작곡자이자 음악 교육자. 본관은 김녕. 호는 낙초(洛初)·가락(駕洛)이고, 창씨명은 호시 유메지[星夢二]이다. 아버지는 김득천(金得千)이다. 금수현(金守賢)[1919~1992]은 1919년 7월 22일에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 전금 마을에서 김녕 김씨(金寧金氏) 충의공파(忠毅公派)의 26세손으로 태어났다. 정미업과 땅콩 재배를 하던 아버지 김득천의 3남...
-
부산에서 성악과 평론 활동을 한 음악가. 김점덕(金點德)[1919~1997]은 1919년 6월 12일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에 있는 고등음악학교와 중앙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해방 직후부터 부산의 경남공업고등학교·부산고등학교 등에서 음악 교사로 재직하였다. 동시에 성악 활동과 평론 활동을 활발히 펼쳐, 초창기 한국 음악 평론계의 중추적인 역...
-
6·25 전쟁 이후 부산 지역에서 실내악·관현악의 부흥을 이끈 음악가이자 교육자. 김진문(金鎭文)[1929~1995]은 1929년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났다. 마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예술대학[현 음악대학]에서 수학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끝을 맺지는 못하였다. 전쟁으로 부산에 온 김진문은 초창기 부산 지역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실내악·관현악 발전에 공헌하였다. 바...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바이올리니스트. 김학성(金鶴成)[1911~1958]은 1911년에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가네코 사부로[金子三郞]이다. 1941년에 일본 동양음악학교 본과를 졸업하였다. 유학 전 25살이던 1936년에 노소전(盧少全)과 결혼하여 이듬해 장남 김준오[전 부산대학교 교수]를 낳았다. 당시 김학성은 부산 항서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
8·15 광복 이후부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음악 연주자이자 교육자. 김형태(金炯台)[1920~2000]는 1920년 경상남도 창원[현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東京] 중앙음악학교를 졸업하였고, 일본 유학 시절 바이올린을 가져와 경상남도 지역에 바이올린을 처음 보급하였다. 김형태의 자녀들은 모두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 이들을 ‘음악 가족’이라고 할 수 있...
-
부산 지역에서 지휘자·편곡자로 활동하며 한국 취주악계를 선도한 음악가. 박이옥(朴二玉)[1937~2001]은 1937년 3월 3일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남항초등학교·해동중학교·해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박이옥은 부산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활동하였던 전형적인 지역 음악인으로서, 주체적 사고와 역량을 갖추고 한국 취주악계를 이끈 인물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악대부 활...
-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음악가. 박종혁은 1942년 1월 17일에 출생하여 서울예술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였으며, 1960년 클라리넷 연주자로서는 국내 최초로 클라리넷 독주회를 열었다. 1963년에는 KBS 교향악단과 협연 방송[베버 「클라리넷 협주곡 제2번 작품 74」] 및 WNYC[미국 뉴욕공영라디오방송국] 연주 방송[브람스 「클라리넷 소나타...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가. 배도순(裵道淳)[1920~2000]은 1920년 5월 3일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나서 김해보통학교와 대구사범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40년에 배도순은 바이올린을 배우기 위해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가, 1943년 3월에 일본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경성방송악단에 입단하였다. 그 뒤에 징용을 피하기 위해...
-
현대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클래식 기타 연주자. 배영식(裵永植)은 본관이 성주(星州)이며, 호는 고암(古巖)이다. 1925년 7월 5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배승원(裵升原)과 김금지 사이에서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36년 11살 소년 시절, 아버지의 공장 한구석에 버려진 낡은 기타를 발견하곤 기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후, 함흥 제2보통학교를 졸업하고...
-
현대 부산 출신의 대중음악 작곡가. 백영호(白映湖)의 본관은 남포(藍浦)이고, 본명은 백영효이다. 1920년 8월 8일 부산에서 출생하였으며, 만주 신징음악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47년 코로나레코드에 입사하였다. 1953년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 소재의 미도파레코드에서 문화 부장 및 전속 작곡가로 활약하면서 백설희·방운아·정향·신해성 등 미도파레코드 전속 가수를 통해...
-
1950년대 이후 부산 음악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음악가이자 음악 교육자. 오태균(吳泰均)[1922~1995]은 1922년 4월 27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아버지 오영세(吳寧世)와 어머니 이신덕(李信德)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으로 타고난 기질이 보였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33년에 레코드 가게에서 우연히 흘러나와 듣게 된 베토벤의 「운명」 교향...
-
부산 출신의 작곡가이자 음악 교육가. 이언도(李彦濤)는 1932년 4월 6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1957년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한 이후 부산 대청동의 남성여자고등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재직하였다. 1972년 서라벌예술대학 음악학과, 1975년 중앙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9년 이상근(李相根)과 제자들이 만든 서양 음악 연주 단체인 향신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교향악 및 실내악 운동을 벌인 부산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임문규(林文圭)[1925~2001]는 192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8·15 광복 전에 일본 도쿄[東京]의 일본대학 예술학과를 졸업하였다. 음악 평론가 유신(劉信)이 임문규의 바이올린 소리를 ‘리리칼한 소프트 톤’이라고 말한 것처럼 서정적인 선율과 부드러운 음향이 임문규의 연주 어법의 특징이었다. 일본...
작곡가
-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작곡가이자 관악 지도자. 김동조(金東兆)[1929~2010]는 부산 동래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일본 동경음악학교 작곡과를 수료하였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건국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취주악단을 창단하여 지도하였다. 6·25 전쟁 동안에는 학도호국단의 촉탁으로 취주악단과 연합 악대를 지휘하였다. 1955년에는 해동고등학교...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작곡가이자 음악 교육자. 김윤하(金允夏)[1925~2000]는 1925년 2월 25일 황해도 재령군에서 태어났다. 평양국립음악대학 작곡과와 평양음악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부산에서 젊은 시절부터 교회의 성가 지도를 하며,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중반까지 작곡 활동을 꾸준하게 해 왔다. 또 부산에서 발행된 가곡집에 지속적으로 작...
-
1940년대 말 부산광역시에서 활동한 음악가. 박용식(朴溶軾)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부산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행방불명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행적에 관해서는 당시 몇몇 일간지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살필 수 있을 따름이다. 박용식은 1918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40년대...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 유신(劉信)[1918~1994]의 본명은 유신종(劉信鍾)이고, 1918년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서 태어났다. 일본 동양음악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동래중학교 음악 교사가 되면서 부산에 정착하였다. 유신은 당시 적합한 음악 교본이 없었던 상태라 서둘러 교본부터 펴내고, 취주 악대를 재구성해서 교내 음악회·운동회...
-
6·25 전쟁 때 부산 지역에서 작곡 활동을 한 음악가. 윤용하(尹龍河)[1922~1965]는 1922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보통학교 5학년까지 다니다, 중국 둥베이[東北]로 이주하여 선양[瀋陽]에서 학교를 마쳤다. 8·15 광복 후 박태현(朴泰鉉)·이흥렬(李興烈) 등과 음악가협회를 만들고, 서울 한양공업고등학교·동북고등학교, 인천 박문여자고등학교 등에서 음...
-
부산·서울·독일 등지에서 활동한 세계적인 음악가. 본관은 칠원(漆原). 아버지는 윤기현(尹基鉉)이고, 어머니는 김순달(金順達)이다. 1. 일제 강점기 윤이상(尹伊桑)[1917~1995]은 1917년 9월 17일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덕산리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세 살 때 경상남도 통영시 도천동 157번지 본가로 가서 호적에 올랐다. 5살 때...
-
부산 지역에서 작곡 활동을 한 음악가. 이상근(李相根)[1922~2000]은 1922년 1월 1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수학하였다. 1953년에 부산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뒤, 합창단을 육성하여 그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지게 하였고, 1955년에 성악가 고태국(高泰國)과 함께 부산사범학교의 음악 교사가...
-
현대 부산 출생이자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음악가. 임종길(林鍾吉)은 본관이 나주(羅州)이며, 1937년 지금의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2가 79번지에서 태어났다. 1964년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1967~2002년 신라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과 교수를 지냈다. 1972년 부산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를 지냈고, 1973년 부산시립합창단을 창단하고 상임 지...
-
부산에서 활동한 작곡가이자 음악 교육자. 최덕해(崔德海)[1915~1975]는 경상남도 울산에서 태어나 대구사범학교와 일본 제국음악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부산에서 활발하게 작곡 활동을 하는 동시에 음악 교육가로서 활동하였다. 경남중학교·부산중학교·남여자상업고등학교·경남상업고등학교 등 여러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음악 교사로 일하였고, 한성여자대학[현 경성대학교...
-
부산 지역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서정적인 가곡을 남긴 작곡가. 함사순(咸士順)[1922~1991]은 1922년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동양음악학교와 평양음악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평안북도 용문과 의정부 등지에서 교편을 잡다가 1948년에 서울로 내려와 광신상업학교에서 다시 교사로 재직하였다. 경상남도 고성을 거쳐 부산의 개성중학...
성악가
-
부산에서 활동한 성악가·합창 지도자·음악 교육자. 고태국(高泰國)[1917~1977]은 1917년 8월 7일에 경상북도 고령의 한학자 집안에서 5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부터 1935년까지 일본 고베[神戶]의 흑신상업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1936년부터 1940년까지 도쿄의 동양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였다. 1940년부터 1944년 4월 30일까...
-
부산에서 활동한 음악 교사이자 성악가. 김진안(金璡安)[1919~1999]은 1919년 4월 19일 경상남도 사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최종 학력은 부산제2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 졸업이지만, 당시 경남여자고등학교 교감으로 있던 금수현(金守賢)의 추천으로 경남여자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부산사범학교 부속 중학교[현재 부산서중학교...
-
부산 지역의 음악 발전에 공헌한 성악가 겸 음악 교육자. 김창배(金昌培)[1922~1988]는 1922년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대부호의 3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청도보통학교와 대구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한 후, 1941년 경성음악학교 예과 2년을 수료하였다. 도쿄[東京]의 동양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던 김창배는 일본이 패색이 짙어가던 1945년 6월 10...
-
부산에서 활동한 성악가이자 음악 교육자. 김호민(金皓民)[1912~1984]은 1912년 4월 9일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다. 일본 동양음악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로 성악가[테너]가 되었다. 진주사범학교와 부산여자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구포중학교·경남여자상업고등학교·마산여자중학교·진해 동고등학교의 교장을 지냈다. 또한 부산음악교육연구회와 부산음악가협회의 회장을 맡...
-
부산에서 활동한 성악가이자 음악 교육자. 박용흡(朴鏞洽)[1919~1976]은 1919년 경상남도 사천에서 출생하여, 일본 중앙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여 졸업하였다. 성악가가 된 후로 밝은 음색의 바리톤으로 부산의 연주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독창 무대뿐만 아니라 합창 등 다양한 연주 활동에 참여하였다. 6·25 전쟁 후 부산에 정착하여 부산여자고등학...
-
부산에서 활동한 음악 교육자. 오명룡(吳明龍)[1917~?]은 1917년 11월 4일에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 순천중학교를 졸업하였고, 일본 동경제국음악학교를 2년간 수료하였다. 성악을 공부하여 테너로 활동하였으며, 1942년에 부산에 정착하여 평생을 학생 지도에 헌신한 음악 교육가로 지냈다. 전주사범학교·부산중학교의 음악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성악가. 정복갑(丁福甲)[1919~?]은 1919년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나, 일본 중앙음악학교를 졸업한 테너 가수였다. 평론가 유신(劉信)의 글에 의하면, 정복갑은 ‘탄력 있는 당당한 고음’을 가졌고, 특히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의 오페라 아리아 「정결한 아이다」가 명연이었다고 한다. 또...
-
부산에서 활동한 성악가이자 음악 교육자. 하규한(河奎漢)[1917~1973]은 1917년 3월 3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해평리 157번지에서 태어났다. 이후 하규한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일본고등음악학교 본과를 졸업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가와자키시립여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해방 후 부산의 경남여자중학교·경남중학교·경남여자고등학교·혜화여자고등학교·부산진...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성악가이자 평론가, 작곡가. 홍일파(洪一波)의 본명은 홍지영(洪志英)이다. 일명 일파(一波)로 불렸으며 생몰 연대는 불확실하다. 남성여자고등학교 영어 교사와 부산음악전문학교 외국어과 교사를 지냈다. 훌륭한 테너였던 홍일파는 1947년 12월 3일 제2회 희망 음악회로 경남 도립 극장에서 열린 ‘부산 음악 대연주회’에서 베르디(Giusepp...
서예가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며 한국 현대 서예의 터전을 일군 서예가·전각가이자 안과 의사.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덕(樹德), 호는 운여(雲如). 1906년 2월 15일 평안남도 평양시 오청리 63번지에서 아버지 김영필(金永弼)과 어머니 양제현(楊薺賢) 사이에서 5남 2녀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김영필은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강동, 중화, 성천 등지에서 군수(郡守)를 지냈...
-
부산 출신의 대표적인 서예가. 본관은 월성(月城). 호는 동계(東溪). 아버지는 박치전이고, 어머니는 청도 김씨(淸道金氏) 김말순이다. 5남 2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부인은 동래 정임덕의 장녀 정모숙이다. 박명찬(朴明讚)은 1914년 2월 28일 동래군 동면 반여리[현 해운대구 반여동]에서 태어났다. 1926년 고종 때 안변 부사, 경주 부윤, 궁내부 특진...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서예가. 배재식(裵在植)[1931~2011]의 호는 고천(古泉) 또는 수정실주인(水晶室主人)이며, 1931년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에서 태어났다. 1951년 진주사범학교[현 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 동일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교장을 역임하였다. 부산대학교·한국해양대학교·부산여자대학[현 신라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교...
-
부산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한 현대 서예계의 거목이자 예서체의 달인. 아명은 오덕개(吳德介), 아호는 청남(菁南). 아버지는 오준경(吳俊京)이고, 어머니는 나복련(羅福連)이다. 오제봉(吳濟峯)[1908~1991]은 1908년 8월 26일 경상북도 금릉군 증산면 장전리[현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장전리]에서 2남 6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2년 서당 도...
화가·미술가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김경(金耕)[1922~1965]은 1922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김만두이다. 1940년 일본대학 미술과에 입학하여 수학한 뒤에 징용을 피해 귀국하여 하동의 진교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해방 후 진주와 마산을 거쳐 1949년 이후 부산에 정착하였다. 6·25 전쟁 중인 1953년 부산에서 서성찬(徐成贊)·김영교...
-
부산에서 활동한 화가. 김남배(金南倍)[1908~1980]는 1908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에 부산일보사[현 부산일보사와는 무관]가 주최한 공모전인 부산 미술 전람회에서 특선하였으며, 1943년과 1944년에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두 차례 입선하였다. 김남배는 유화 그림을 배워 일가를 이룬 후에 수묵화의 세계로 빠져든 실험적인 예...
-
부산 지역 출신의 화가이자 교수, 디자이너, 저술가. 김수석(金守錫)은 193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시각디자인 전공]를 졸업하였다. 숙명여자대학교에 재직하다가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로 이직하였다. 1966년부터 대한민국 산업 디자인전 초대 작가를 지냈다. 1970년부터 1980년까지 부산 미술 대전 초...
-
1950년대 이후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김원(金原)[1921~2009]은 1921년 함경남도 정평군 문산면 풍양리에서 태어났다. 함흥영생중학교에서 5년, 함흥사범학교 강습과에서 1년을 수학한 후 해방 전 평안남도 강서군의 반석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6·25 전쟁으로 부산에 피난 온 후, 부산에 정착하였다. 동아중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하다가 정년 퇴임하였다...
-
부산 지역에서 초기 미술계를 이끈 서양화가. 김원명(金原明)[1924~1994]은 1924년 일본에서 출생하여, 1942년 일본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1946년 3·1절 기념 미술전에 김남배(金南倍)·우신출(禹新出)·김종식(金種植)·김윤민(金潤玟) 등과 출품하였으며, 1948년 『민주 중보』가 주최한 제1회 부산 미술 전람회에 서성찬(徐成贊)·문신·김남배...
-
부산의 몰운대·영가대·태종대 등을 그린 『진재 화첩』을 남긴 진경산수화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극양(克讓), 호는 진재(眞宰)·산초(山樵)·묵초(黙樵). 아버지는 문인이자 화가인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1658~1721]이다. 부인은 연안 이씨[1712~1777]로 동중추부사(同中樞府事) 이청(李淸)의 딸이다. 자식으로는 김지행(金摯行)[1733~1783...
-
부산에서 활동한 미술 교사이자 서양화가. 김윤민(金潤玟)[1919~1999]은 1919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본 오사카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문전(文展)과 재야전인 신관서전에 출품하여, 연 4회에 걸쳐 입선하는 등의 활동으로 명성을 얻었다. 해방 직전에 귀국하여 해방 후 경남중학교 미술 교사로 부임하였다. 1946년 김종식(金種植)·김...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근현대 미술가. 본관은 경주. 호는 남장(南藏). 김종식(金鍾植)[1918~1988]은 1918년 12월 13일 부산 동래구 장전동[현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김하준(金河駿)과 어머니 정연군(鄭然君)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 성지공립보통학교[현 성지초등학교], 1937년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현 동래...
-
개항기 부산에서 서양인을 대상으로 그림을 제작, 판매한 풍속화가. 김준근(金俊根)은 개항기의 풍속화가로, 생몰 연대나 사승(師承) 관계는 미상이다. 호는 기산(箕山)이다. 김준근은 1886년 부산 초량[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살면서 고종의 초청으로 내한한 제독 슈펠트(Shufeldt, R. W.)의 딸에게 우리나라의 민속화와 풍속화를 그려 주었다. 1889년에서...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여류 미술가. 김천옥(金玔玉)[1933~1990]은 1933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출생하였다. 1946년 부산여자중학교[현 부산여자중·고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중학 시절인 1948년에 16살의 어린 나이로 부산 미술 전람회에 입선하였다. 다음 해인 1949년에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와 부산 미술 전람회에 연달아 입선을 하면서 김천옥은...
-
부산 현대 미술의 비구상 계열의 대표 작가. 김홍석(金洪錫)은 본관이 김해(金海)이며, 1935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다. 1955년 부산사범대학 미술교육과[현 부산교육대학교]를 1회로 졸업한 후 본격 미술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6년 동아대학교 미술학과, 1978년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1978년 테네시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1989년...
-
부산 출신의 행정가 김우영(金宇英)과 결혼한 근대 여류 미술인. 본관은 나주. 호는 정월(晶月). 아버지는 나기정(羅基貞)이다. 나혜석(羅蕙錫)[1896~1948]은 1896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나기정은 대한제국에서 경기관찰부 주사를 지냈고, 시흥 군수로 재직하다가 국권 강탈을 맞았으며, 합병 후 시흥 군수에...
-
부산 출신의 전업 미술가. 박병제(朴炳濟)[1954~2009]는 1954년 11월 7일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에서 태어났다. 1968년 토성초등학교, 1971년 덕원중학교, 1974년 배정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앙대학교 회화과에 진학하였으나 1978년 중퇴하였다. 이후 박병제는 1979년 ‘3동인 자화상전’을 시작으로, 1985년부터 2005년까지 모두...
-
부산광역시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박생광(朴生光)[1904~1985]은 1904년 8월 4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서 진주제일보통학교·진주농업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회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진주농업학교를 수료하였다. 창작 초기인 1930년 제9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 서양화 「소묘」로 입선을 하고, 다음 해인 1931년 조선 미술 전람회에 동양화 「채포」로 입선을...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박일주(朴一舟)의 본명은 박성규(朴性圭)이다. 1910년 2월 17일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경상북도 청도군으로 이주하여 소학교를 다니다 중퇴한 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30년에 졸업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의 문화학원 서양학과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1935년 졸업하였다....
-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박춘재는 1936년 6월 14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사범학교[현 부산교육대학교] 미술과를 거쳐 동아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화단에서 화가 김종식(金鍾植)을 만나 스승으로 모셨다. 그리고 『국제 신문』과 『부산 일보』에 삽화를 그리면서 30여 년을 근무하였다. 이 과정에서 『부산 일보』에 연재물 「지리산을 통곡한다」 등 숱한 삽...
-
18세기 동래부에서 활약한 무관이자 화가. 변박(卞璞)의 자는 탁지(琢之), 호는 술재(述齋)이다. 동래부에서 태어나 무청(武廳)의 최고직인 장관청 천총(千摠), 별군관청 행수(行首), 수첩청 별장(別將) 등을 역임하였다. 1763년에서 1764년에는 일본에 가는 통신사행에 참여하여 화가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통신사행의 최고 책임자인 조엄(趙曮)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
-
부산 출신의 서양화가. 서성찬(徐成贊)[1906~1958]은 1906년 부산광역시 영도구에서 태어났다. 상업실수학교를 나와 큰 양복점에서 점원으로 일하였다. 당시에 모은 돈으로 일본의 가와바다양화연구소에 들어가 후지다쯔구지에게 3년 동안 수학하였다. 1935년에 김남배(金南倍)·서태문 그리고 일본 작가들과 함께 경남미술회를 만들었으며, 이는 부산 미술계에서 첫...
-
부산광역시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서진달(徐鎭達)[1908~1947]은 190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호는 도풍(稻風)이다. 부산으로 와서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3년 동안 미술 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1935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고바야시[小林萬吾] 등에게 인상주의와 아카데미즘이 절충된 조형어법을 배웠다. 1931년에는 제10...
-
부산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송혜수(宋惠秀)[1913~2005]는 1913년 8월 13일에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상수보통학교와 숭인고등보통학교에서 공부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유화가 츠다 세이슈에게서 그림 공부를 하였다. 이때 송혜수는 두 살 연상의 이중섭(李仲燮)을 만났다. 1938년 도쿄의 제국미술대학[현 무사시노미술학교] 유화과에 입학하여 1...
-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풍경화가. 신창호는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경제학과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1960년대 초 삶의 터전을 부산으로 옮기면서 중구 중앙동에 ‘신화백 아틀리에’를 마련한 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부산 화단에서 신창호는 전혁림(全赫林), 추연근, 김종식(金種植), 임호(林湖), 양달석(梁澾錫) 등과 함께 구상...
-
부산에서 활동한 미술가. 양달석(梁達錫)[1908~1984]은 1908년 10월 18일 경상남도 거제시 사등면 사등리 성내 마을에서 아버지 양우유와 어머니 신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여산(黎山)이다. 어릴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유년기에 머슴살이를 할 정도로 가난하였다. 16살이 되던 1924년 자형의 도움으로 통영사립강습소에 입학하여 비로소 현...
-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불교 미술 전승가. 본관은 남원. 본명은 양낙현(梁洛現), 호는 정희당(定熙堂). 아버지는 양철호이고, 어머니는 최씨이다. 양완호(梁玩虎)[1869~1933]는 1869년 11월 4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202번지에서 양철호의 장자로 태어났다. 문화재청 보고서에 1890년 궁중 도화서의 화원이 주관하였던 합천 해인사의 불사에 관련하였다는 기...
-
대구 출생으로 부산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겸 도예가 엄성관은 193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부산사범학교(현 부산교육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였으나 4학년 때 퇴학을 당하였다. 일찍이 학생 시절이었던 1948년과 1949년에 엄성관은 제1회와 제2회 ‘부산미술전람회’에서 두 차례에 걸쳐 연속적으로 입선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무렵 ‘부산미술...
-
1950년대 부산에서 활동한 화가. 오영재(吳榮在)는 1923년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에서 태어났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일본 도쿄 아사카다니[何佐賀谷] 미술 학원에서 수학하였고, 경주예술학교 미술과[1950~1953]를 졸업하였다. 이후 울산제일중학교[1953~1956]와 울산여자고등학교[1956]에서 교편을 잡았다. 부산으로 이주해 온 것은 1956년이었다....
-
1980년대 민족·민중 미술을 대표하는 부산 지역 출신의 민중 판화가. 오윤(吳潤)[1946~1986]은 1946년 부산 동래에서 「갯마을」의 작가인 소설가 오영수(吳永壽)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이 서울로 이주하면서 오윤도 서울로 가게 되었다. 이후 오윤은 서울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197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시절부터 오윤...
-
부산 출신의 미술가. 우신출(禹新出)[1911~1992]은 1911년 9월 20일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에서 태어나 부산진소학교를 다녔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우신출은 부산 지역의 일본인 화가들의 영향을 받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후 돌연 출가해 범어사로 들어갔다가, 1932년 제3회 부산 미술 전람회에 입선하게 되면서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
6·25 전쟁 이후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이규옥(李圭鈺)[1916~1999]은 1916년 경상남도 진양[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태어나,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1940년 김은호(金殷鎬)에게 배운 뒤 1941년 일본 도쿄[東京]의 일본미술학원을 3년 수료하였고, 1943년 조선미술원에 입학하였다. 1939년 후소회 회원전에 출품하였다. 8·15 광복 후 서...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이석우(李錫雨)[1928~1987]는 1928년 5월 28일 충청북도 청원군 강서면 문암리에서 태어났다. 1946년 청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1년에 6·25 전쟁으로 군대에 입대하였다가 통영으로 후송되어 제대하였다. 1950년대 초 통영중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부산 미국...
-
조선 후기 동래부에서 활동한 무임이자 지방 화사. 본관은 벽진(碧珍). 호는 송암(松庵). 이시눌(李時訥)은 동래부의 장관청(將官廳) 파총(把摠)·별군관청(別軍官廳) 군기감관(軍器監官)·별기위청(別騎衛廳) 백총(百摠)·작대청(作隊廳) 백총(百摠)·수첩청(守堞廳) 백총(百摠) 등 동래부 무청의 각종 무임직을 역임하였다. 이시눌의 작품 『농가월령 12곡병』은 동래 세거인이었...
-
부산의 제1세대 판화가이며 교사이자, 미술 이론가. 이용길(李龍吉)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부터 부산에서 거주하며 평생을 미술 작가로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였다. 또한 교사로 재직하며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고, 부산 지역의 미술 자료를 모아 정리 및 발표하였다. 이용길은 1938년 일본 나고야에서 출생하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부산으로 와서...
-
부산에서 활동한 미술가이자 예술 행정가. 이준(李俊)은 1919년 10월 7일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났다. 1928년 남해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34년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에 일본으로 가서 와카야마시상업학교에 입학하여 1939년 졸업하고, 일본 태평양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서양화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46년 부산에 정착하였는데, 영도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
부산에서 활동한 한국의 대표적인 근현대 미술가. 이중섭(李仲燮)[1916~1956]은 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 742번지에서 태어났다. 호는 대향(大鄕)이다. 부농의 가정에서 삼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던 이중섭은 5세 되던 해인 1920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1929년에 부유했던 외가로 가서 살게 되었다. 평양의 종로보통학...
-
일제 강점기 부산 최초의 일본 유학 서양화가이자 친일 미술가. 임응구(林應九)[1907~1994]는 1907년 9월 13일 부산부 대신동 576-2번지[현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일본을 오가며 일본 화가 오카다 사브로스케[岡田三郞助]에게 배웠고, 1928년에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부산 지역 최초로 일본에서 그림 공부를 한 유학생...
-
부산광역시에서 활동한 화가. 임호(林湖)[1918~1974]의 본명은 임채완(林采完)이고, 1918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미술학교를 마치고 해방 이후에 마산에서 교직 생활을 하였다. 1949년에는 김남배(金南倍)·김봉기·김원갑·김윤민(金潤玟)·서성찬(徐成贊)·우신출(禹新出), 마산의 이림·이준, 진해의 장윤성·조영제, 통영의 전혁림(全赫林)...
-
1950년대에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현대 미술가이자 영남 지역 비구상 회화의 시원. 전혁림(全赫林)[1916~2010]은 1916년 1월 21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29년 통영보통학교, 1933년 통영수산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38년에 부산 미술 전람회에 「신화적 해변」·「월광(月光)」 등의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2...
-
부산 지역에서 형상 미술을 주도한 서양화가. 정진윤(鄭鎭潤)[1954~2007]은 1954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1975년 중앙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하고 1980년에 졸업하였다. 1986년 서울의 한강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후에 1988년 부산의 사인 화랑, 1992년 부산의 갤러리 월드, 1993년 서울의 나무 화랑, 1995년 부산의 송하 갤러리, 1...
-
현대 부산 1세대 미술가이자 미술 교육자. 조동벽은 1920년 중국 옌지[延吉]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로 가서 일본대학 미술학과에서 수학하였다. 6·25 전쟁 시기를 전후하여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조각가 문신을 비롯하여 김경(金耕)·김윤민(金潤玟)·김종식(金種植)·송혜수(宋惠秀)·양달석·오영재·우신출(禹新出)·전혁림(全赫林)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6·25 전쟁 때...
-
부산 출신의 한의사이자 동양화가. 호는 석영(石影). 한의학을 전공하였으나 뒤늦게 예술의 길에 접어들어, 특히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한 역사 인물상이나 역사화를 많이 제작하며 자신의 기량을 돋보였다. 또한 한의학 분야에서도 전통 한민족의 우수성과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최광수(崔光洙)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범방 마을 출신으로, 한의사이자...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 하인두(河麟斗)[1930~1989]는 1930년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났다. 1950부터 1954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다녔다. 하인두는 대학을 졸업한 직후 부산으로 내려와 동주여자중학교[1954년]·경남여자중학교[1955년]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6년에 부산 광복동 청우...
-
부산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한상돈(韓相敦)[1908~2003]은 1908년에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원산에서 양조장과 농장을 경영하는 아버지를 따라 원산으로 간 뒤 25세에 일본미술학교 회화과에 입학하여 29세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원산에서 생활하였으며, 일본인 부인을 두었고 당시 이중섭(李仲燮)과 알고 지냈다. 6·25 전쟁 때 부산으로 와서 일생을 마...
-
부산에서 활동한 문인 화가. 본관은 김해(金海). 본명은 허응중(許應中), 호는 운전(芸田)이다. 허민(許珉)[1911~1967]은 1911년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덕촌리 308번지에서 태어났다. 영남의 거유 김황(金榥)에게 한학을 배우고, 김규진과 김은호 등의 문하생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1934년 제13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세필(細筆) 채색의 「춘난(...
-
6·25 전쟁 이후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경찰. 황규응(黃圭應)[1928~2004]은 1928년 1월 20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문중리에서 태어났다. 1945년 서울의 중동중학교를 졸업하고 춘천사범학교 강습과를 다녔다. 유년 시절 일광면 일대에서 선주(船主)였던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난 황규응은 공부보다 그림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본격적인 그림 수업은...
건축가
-
6·25 전쟁 피난 시절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현대 한국 건축계의 선구자.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여천(如泉). 아버지는 김영필(金永弼)이고, 어머니는 이영자(李英子)이다. 김중업(金重業)[1922~1988]은 1922년 평양에서 5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군수인 아버지를 따라 강동·중화·성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요코하마고등공업...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건축가이자 건축학자. 도영주(都映州)[?~1991]는 1944년에 중국 만주의 신경공업대학(新京工業大學)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1948년 진주농림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1949년에 진주농과대학 강사를 거쳐, 1955년 8월 5일에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토건공학과에 부임하였다. 이후 1987년 8월에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부산대학교...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건축가. 허선행(許善行)[1922~2008]은 1922년 5월 29일에 태어났다. 일본 동경고등공업학교에서 건축을 배웠다. 1959년에 건축기술사 자격을, 1965년에 건축기사 1급 자격을 취득하였다. 같은 해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에 부산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여 작품 활동에 몰입하였다. 1956년부터 1964년까지 부산건축사회 초대 회...
사진 작가
-
부산에서 활동한 사진작가. 임응식(林應植)[1912~2001]은 1912년 11월 11일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에서 태어났다. 부산 최초의 일본 유학 서양화가이자 친일 미술인인 임응구(林應九)의 동생이다. 임응식은 부민공립보통학교[현 부민초등학교]와 일본 와세다중학교에 재학하였다. 1931년 부산체신리원양성소를 수료하고, 1932년부터 1934년까지 일본 도...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1세대 사진작가. 정인성(鄭寅星)[1911~1996]은 1911년 5월 24일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났다. 1931년 휘문고등보통학교[현 휘문고등학교]를, 1935년 일본 동경사진학교를 졸업하였다. 1936년 울산사진연구회를 조직하고, 창립 회원전을 개최하여 출품하였다. 이듬해인 1937년 정인성은 부산으로 이주하여 이후 줄곧 부산을 지키...
-
부산 지역 에서 활동한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崔敏植)은 1928년 3월 6일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1945년 평안남도 진남포 미쓰비시 기능자 양성소 기능 교육과 기능공으로 근무하였다. 미술에 관심이 있던 최민식은 군을 제대한 후 1955년 일본으로 밀항하여 도쿄[東京] 중앙미술학원에 입학하여 학업과 일을 병행하였다. 도쿄의 헌책방에...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예술인. 최시병(崔時柄)[1931~2000]은 1931년 8월 27일 일본 교토[京都]에서 태어났다. 호는 모운(牟雲)·일목(日木)이다. 1943년 오사카[大阪] 개천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오사카 낭화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잠시 본적지인 부산광역시 강서구 화전동 사암 마을에서 살았다. 그 후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으로...
무용가
-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여성 무용가. 김춘방(金春芳)은 출생과 사망 시기를 알 수 없으나,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해외 공연을 한 여성 무용가로 부산 춤사에 기록되어 있다. 1950년대 중반 김향촌, 이춘양, 이매방, 황무봉(黃舞峰) 등과 함께 부산에서 활동하였으며 중구 대청동에 정착하였다. 이 무렵 김춘방은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타이완의 타이베이[臺北], 진먼 섬[金門島],...
-
부산 지역에서 발레가 뿌리내리는 데 기여한 발레 교육의 선구자. 김미화(金美華)[1922~1984]의 본명은 김옥순이고, 1922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1936년 전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외국어전문학교를 마치고 1943년부터 1945년 3월까지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치바호순무용연구소에서 현대 무용을 공부하였다. 1945년 4월 귀국하여...
-
1940년대 이후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민속 무용가. 김동민(金棟旻)[1910~1999]은 1910년 경상남도 양산군 동면 석산리[현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에서 대지주의 외아들로 태어나 일본 도쿄[東京]의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일찍이 1940년대에 부산시 서구 토성동 3가 6번지에 있는 자택에 부산 최초의 민속무용연구소[후에 민속예술학원으로...
-
부산 출신으로, 부산 최초의 남자 무용수이자 무용 교육자. 김향촌[1924~1972]은 1924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최초로 발레를 춘 남자 무용수였다. 정지수(鄭志樹)의 문하에서 발레를 사사하였고, 국내에서는 최승희(崔承喜), 국외에서는 러시아의 니진스키(Vatslav Nizhinskii)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김향촌은 최승희의 공연을 보고 큰 감명을...
-
부산 지역 최초의 발레단인 푸리마발레단을 창립한 여성 무용가. 김혜성(金慧星)[1920~1988]의 본명은 김지하이다. 1937년 부산 경남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지오다여자대학[千代田女子大學] 가정학과에 입학하였다. 일본 유학은 김혜성이 무용을 배우지 않겠다는 조건 아래 아버지에게 허락받은 것이었지만,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무용을 배우기 위해 세계적인 발...
-
현대 부산 「동래 학춤」의 최고 춤꾼. 김희영(金熙英)[1923~1972]은 동래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선친 김귀조(金貴祖)[1886~1965]에게서 춤을 전수받은 이후 계속 「동래 학춤」을 추었다. 1970년 김희영을 학춤의 기능 보유자로 인정하는 「동래 학춤」에 대한 문화재 지정 보고서가 문화재관리국에 접수되었으나, 김희영은 공문을 받기 전인 1972년 10월...
-
현대 부산의 대표적인 남성 춤꾼. 성승민(成昇珉)은 1932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고, 전통 춤과 창작 춤을 넘나들며 활동하였다. 6·25 전쟁 후 한량 춤 춤꾼인 김진홍과 만나면서 그의 소개로 부산에서 활동한 이매방에게 춤을 사사하였다. 1959년 충무동에 성민무용연구소를 개설하였고, 1960년 8월 항도 극장에서 성민 창립 무용 발표회를 열었다. 1961년 4월...
-
1973년 부산시립무용단 창단을 주도해 초대 안무자를 맡으며 부산 무용계의 초석을 다진 여성 무용가. 손세란(孫世鸞)[1933~2010]은 경상남도 의령에서 토호의 딸로 태어나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찍부터 신문화를 접한 부모의 영향으로 자유분방하게 자라났으며, 어려서부터 무용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1952년 가족과 함께 부산에 정착한 뒤 이매방, 한영숙,...
-
부산 지역에서 한국 무용을 일군 신무용 2세대이자 무용 교육자. 황무봉(黃舞峰)[1930~1995]은 1930년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황경락이다. 현지 발레무용연구소에서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고, 귀국 후 한영숙(韓英淑)·조택원(趙澤元)·김보람에게서 사사하였다. 일본에서 귀국한 후 1954년 진주시에서 황무봉예술무용학원을 개원하여 제자들을...
-
현대 부산 발레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한 무용가. 황창호(黃昌鎬)는 1936년에 청주에서 태어났다. 청주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 공군하사관학교를 지원해 김포에서 의무병으로 근무하였다. 어느 날 송범[한국 무용가, 전 국립무용단 단장]의 「백조」 발레 공연을 보고 발레리노가 되기로 결심하고 다음 날 송범무용연구소를 찾아가 문하생이 되었다. 1958년 제대 후, 송...
영화인
-
현대 부산의 대표적인 촬영 기사. 곽재영(郭在榮)[1918~1988]은 본명이 곽열(郭烈)이다. 평소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으로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 1940년대 중국 상하이의 영화사에 몸담고 있다가 광복 후 귀국해 1946년 미군정청 영화과에 근무하였다. 1946년에는 극영화 「갈매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47년 주한미국공보원 영화과 과장을 거쳐 1956년부터 경...
-
부산 지역에서 8㎜ 영화 제작의 전성시대를 주도한 영화인. 김응윤(金應潤)[1930~2000]의 성장 과정과 초기 작품 활동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40대에 이른 1970년대부터 알려져 있다. 이 무렵 부산에서는 아마추어 영화 동호인들의 8㎜ 소형 영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김응윤은 이런 움직임에 앞장서서 선구적으로 소형 영화 활동을 이끌...
-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인. 나운규(羅雲奎)[1902~1937]는 1902년 10월 27일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면에서 나형권의 3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회령공립보통학교와 신흥학교 고등과를 거쳐, 1921년 중동중학교 고등예비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나운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에 참여하여, 4월 초순 회령 지역...
-
부산 출신으로 무성 영화 시대의 인기 변사. 서상호(徐相昊)[1890~1938]는 1890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났다. 서상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일본 도쿄[東京]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였다는 것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언제 어떤 경로로 서울로 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한때 종로의 수문동경찰서에서 통역생으로 지냈다. 혁신선미단에서 연기자로 활동하...
-
부산 출신의 연극·영화배우. 서월영(徐月影)[1904~1973]의 본명은 서영관(徐永琯)이다. 1903년 4월 8일 부산에서 태어나 일본대학에서 유학하였다. 귀국 후 1925년에 극단 토월회에 신인 배우로 입단하였고, 조선배우학교 1기생으로 졸업하였다. 1927년 「불망곡」으로 영화에 데뷔하였다. 그 후 동양 극장 전속 극단인 청춘좌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19...
-
부산광역시에서 활동한 영화감독. 신경균(申敬均)[1912~1981]은 1912년 9월 15일 경상북도 선산에서 태어났다. 창씨개명한 이름은 대공경균(大空敬均)·대공구황(大空久晃)이다. 선산공립보통학교·대구농립학교를 거쳐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교토의 일본영화연극학원에 입학하였다. 처음에는 연기자를 꿈꾸다가 나중에 연출부로 전환하였다. 1932년 도쿄의 신...
-
6·25 전쟁 때 부산에서 공보처 영화과장을 지낸 영화배우이자 감독. 안종화(安鍾和)[1902~1966]는 1902년 1월 2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안용희(安龍熙)이고 뒤에 안전진웅(安田辰雄)으로 창씨개명을 하였다. 서울에서 공성학교를 졸업하고 봉명중학교를 다녔다. 1920년에는 신파극단 혁신단의 배우로 「장한몽」에 출연하였다. 1922년에는 윤백남(尹白南)의...
-
부산 출신의 영화 촬영 기사. 양세웅(梁世雄)[1906~?]은 1906년 12월 11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제2공립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의 동아키네마에 입사하여 촬영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였다. 1932년 동아키네마에서 카메라맨으로 승진하고, 「눈물의 빛」·「두 개의 유방」·「그 밤의 노래」 등을 촬영하...
-
1920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영화감독. 이경손(李慶孫)[1904~1976]은 1904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체신국 부설 학교인 상성학교에서 공부하고, 일본으로 가서 교토[京都]에 있는 동지사대학의 분교인 경성신학원에서 2년간 종교·윤리·사회학을 공부하였다. 귀국 후 1923년 이경손은 무대예술연구회 동인이 되었다. 1924년에는 부산시 중구 중앙동에 있는 부...
-
부산광역시에서 활동한 영화감독. 이규환(李圭煥)[1904~1982]의 아호는 성파(星波)이다. 1904년 2월 28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보정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의숙(徽文義塾)[현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1918년 대구 계성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였다. 이규환은 이듬해 일어난 3·1 운동에 참여하여 경상남도 밀양으로 피신하였다...
-
부산 지역 최초의 영화에 출연한 제1호 영화배우. 이주경(李周璟)[1900~1938]은 1900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부산공립보통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남은행 부산본사에서 출납계 직원으로 재직하였다. 1924년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였는데,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제작한 최초의 영화인 「해의 비곡」이었다. 조선키네마주식회사는 19...
-
1960년대 이후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영화 촬영 기사. 이필우(李弼雨)[1897~1978]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를 8세 때 여의고 어머니가 개가하였으며, 12세에는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는 등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이필우의 아버지는 시계포를 운영하였는데, 그 점포에서 시계·엽총·사진기·환등기·축음기 등의 갖가지 신문물도 취급하고 있어서 이필우는 동생 이...
-
부산 출신의 영화 평론가이자 부산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장갑상(張甲相)은 1922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보통학교[현 봉래초등학교],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4중학교[東京四中學校][현 호산고등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귀국하여 경상남도 마산의 해인대학교[현 경남대학교]에 재학하였다. 뒤에 동아대학...
-
197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부산 출신의 영화감독. 하길종(河吉鍾)[1941~1979]은 1941년 4월 13일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1948년 부산 초량의 중앙국민학교, 1954년 경남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56년 형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 중동중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59년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불문학과에...
-
부산 지역에서 영화 비평 분야를 개척한 영화 평론가이자 언론인. 허창(許彰)[1927~2000]의 본명은 허창도(許昌道)이며, 1927년 5월 28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통영수산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사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1955년 『국제 신보』[현 『국제 신문』] 문화부에 입사하였다. 1958년 부산일보사로 옮겨 문화부장·논설...
연극인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연극인이자 교사. 강용길(姜用吉)[1946~1987]은 부산교육대학의 연극반에서 연극을 시작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강용길은 1973년 7월 17일 부산교육대학 출신들이 창단한 극단 한새벌에 창단 멤버로 참여하였다. 극단 한새벌은 교육대학 교수 이충섭을 중심으로 졸업생인 이성규·강용길·주용욱과 재학생인 김문홍·서성애·강미열·박범식 등이...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연극인이자 교사. 박범식(朴範植)[?~2007]은 1950년대에 태어나서 1973년 부산교육대학교에 입학하여 연극반에 가입하였다. 때마침 그해 7월 17일 부산에서는 당시로서는 전국 유일의 교사 극단인 ‘한새벌’이 창단되었다. 극단 한새벌은 부산교육대학교의 교수인 이충섭을 중심으로 부산교육대학교 졸업생인 이성규·강용길·주용욱과 재학생인 김...
-
부산 지역 현대 연극의 1세대 연극인. 설상영(薛相英)[1934~2002]의 예명은 설영. 아버지는 설형식이고, 어머니는 김재남이다. 1934년 2월 2일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아버지 설형식이 공의(公醫)로 일했던 탓에 어린 시절 설상영은 아버지의 전근지를 따라 사천·대구·부산 등지로 다녔고, 사천에서 1945년 8·15 광...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연극배우이자 연출가. 송성엽[1951~2002]은 부산공업전문학교[현 부경대학교]에 입학하여 연극을 시작하였는데, 그가 출연한 작품으로 진주 개천 예술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로 일찌감치 자질을 인정받았다. 부산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뒤에 이현대를 만나 의기투합하게 되고, 1974년 3월 동아대학교 극예술연구회 출신들을 주축으로 하는 극...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극작가이자 배우, 연출가. 이현대[?~2004]는 동아대학교에 입학하여 극예술연구회에서 연극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0년대는 대학 연극의 황금기였고, 특히 부산은 대학 연극이 왕성하였던 곳이었다. 또한 1973년 10월 10일 부산 시민 회관이 개관되어 연극 공연을 위한 시설이 마련되면서 부산 연극계는 일대 중흥기를 맞았는데, 이 무렵...
-
한국 모노드라마를 개척한 부산 출신의 연극배우. 추송웅(秋松雄)[1941~1985]은 1941년 9월 4일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서외리 167번지에서 태어났다. 1947년 진주 천전국민학교, 1948년 마산 중리국민학교·내서국민학교·상남국민학교를 다니다가 부산으로 이주하여 사상국민학교를 거쳐 1953년 청룡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1956년 동아중학교, 195...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연극 및 뮤지컬 연출가. 홍성모(洪成模)[?~2008]는 동아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하였다. 홍성모의 재능이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음악 분야였는데, 1970년대부터 뮤지컬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하였고, 대학 시절인 1977년 제1회 대학 가요제에서 「제비」로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이 노래는 뒤에 가수 조영남(趙英男)이 리메이크하여 크게 인기를...
대중문화 예술인
-
부산광역시 출신의 음악가. 본관은 장흥. 아버지는 고광혁이고, 어머니는 김가산이다. 고의수(高義守)[1919~1975]는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에서 고광혁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두 형은 모두 동래고등보통학교를 다녔으나, 고의수는 갑자기 가산이 기울어진 탓에 대저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였다. 원래 초등학...
-
현대 부산 출신이자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대중음악 작곡가. 김종유의 본명은 김종윤이다. 1933년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에서 태어났다. 1964년 서울에 있는 아세아레코드 소속으로 활동하였으며, 1965년 「월남 소식 고향 소식」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1967년 3월 울산방송국 악단장을 지냈으며, 1968년에는 아세아레코드의 문예부에서 근무하였다. 퇴직 후...
-
6·25 전쟁 때 부산 지역을 무대로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한 가수. 남인수(南仁樹)[1918~1962]는 1918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최창수(崔昌洙)였으나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진주의 강씨 문중으로 개가(改嫁)하여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라 강문수(姜文秀)로 이름을 바꾸었다. 진주 제2공립심상소학교[현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가서 사이타...
-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대중음악 작사가이자 코로나레코드사 대표. 야인초(野人草)[?~1999]의 본명은 김봉철이다. 황해도 박연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체류 중 해방이 되자 1946년 귀국하여 영도구 남항동에서 선박용 스크루를 제작하는 철공소를 운영하였다. 식민지 시절 일본에서 음반 제작 경험이 있던 야인초는 철공소 내에 음반 제작 설비를 갖추었는데, 이것이 부산 최초의 음...
-
부산 출신의 대중가요 작사가. 천봉(千峰)[1923~1989]의 본명은 천상률이다. 1923년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 3가에서 태어났다. 부산 토박이 천봉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자갈치 어시장에서 얼음 소매업을 하는 부모를 도우며 남몰래 독학으로 1941년 18살 때 경상남도 순경 채용 시험에 합격하여 한때 부평파출소에서 경찰로 근무하였다. 천봉은 틈틈이 시와...
-
현대 부산 출신이자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음악인. 최익봉(崔翼鳳)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최상봉이라고도 하였다. 1933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불나비」, 「쾌지나 칭칭나네」로 유명한 원로 가수 김상국과 동네 단짝 친구이며, 김상국에 의해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7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며 음악과 인연을 맺었고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시절에는 작...
-
6·25 전쟁 당시 부산에서 활동한 가수 겸 작곡가. 한복남(韓福男)은 본명이 한영순(韓榮淳)이다. 1919년 6월 25일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평안남도 안주에서 일광 양복점을 운영하다가 1942년 이동연예대에 입단하여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6년 월남한 뒤 1947년 KPK악극단 무대에서 직접 작사·작곡한 「빈대떡 신사」와 「저무는 충무로」를 부르다가...
-
부산 출신으로 195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 본명은 현동주(玄東柱). 아버지는 현명근이고, 어머니는 오봉식이다. 현인(玄仁)[1919~2002]은 1919년 12월 14일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 1가에서 태어났다. 영도에 있는 스탠더드석유회사를 다녔던 아버지 현명근과 일신여학교를 나온 신여성이었던 어머니 오봉식 사이의 2남 1녀 중 맏이였다. 어린 시절...
-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마당극 배우이자 민족 문화 운동가. 황주효(黃柱熇)는 본관이 창원(昌原)이다. 1959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아버지 황태준과 어머니 김선순 사이에서 4녀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5년 경상남도 충무국민학교에 입학하여, 1968년 부산 부민국민학교[현 부민초등학교]로 전학하였다. 1971년 해동중학교, 1974년 금성고등학교, 1979년 동아대...
예술 평론가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한국 무용 평론의 1세대이자 무용 이론 정립의 선구자. 강이문(姜理文)[1923~1992]은 1923년 함경남도 서천에서 태어났다. 1936년 함경북도 학남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41년 함경남도 함흥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일본대학 척식과를 수료한 뒤 일제 학도병 징용을 피해 만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무궁화 신생』의 편집장...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미술 평론가. 김강석(金剛石)[1932~1975]은 1932년 일본 도쿄[東京]의 일본교구(日本橋區) 상기정(箱岐町) 2정목(二丁目)에서 태어났다. 1939년 경화심상소학교에 입학하여 1943년에 군마현(群馬縣) 산전군(山田郡)의 상생국민학교(相生國民學校) 6학년에 편입하였으며, 1944년에 도쿄의 향도구립중학교(向島區立中學校)에...
-
부산 탑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미술 애호가이자 저술가. 김창협(金昌俠)은 1923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났다. 이용길의 『부산 미술 사료』에 따르면, 미술 애호가였던 김창협은 1962년 2월 6일~2월 10일 청우 싸롱에서 열린 제1회 신춘 부산 화전을 기획하였는데, 이때 김영덕·하인두(河麟斗)·성백주·이석우(李錫雨)[동양화]·추연근·민백향·김영교·김종식(金...
-
1997년부터 부산에서 활동한 전시 기획자이자 미술 평론가. 이동석(李東碩)[1964~2004]은 1964년 10월 14일 경상남도 마산에서 출생하여, 통영초등학교와 통영중학교를 졸업하였다. 마산중앙고등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 때 자퇴하였고, 1982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하였다. 1991년 인하대학교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한 뒤 기업에서 근무하...
-
1960년대 이후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미술 평론가이자 교육자. 이시우(李時雨)[1916~1995]는 1916년 11월 10일 경상남도 울산군[현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東京]의 니혼대학[日本大學] 법학부와 예술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49년부터 1956년까지 경상북도 상주공립중학교의 교감, 부산 영남상업고등학교[현 부산정보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
기타
-
6·25 전쟁 이후 부산 지역에서 예술인을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한 인물. 김상수(金尙洙)[1913~1998]는 1913년에 대구에서 부잣집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과수원·비단 포목상·술도가 등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그러나 7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모가 이복동생을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 대구공립상업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시절에 넉넉한 집안 덕분에 어려운 친구...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차 문화 연구가이자 다도 보급가. 최규용(崔圭用)[1903~2002]은 경상남도 통영시 용남면 우전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금당(錦堂)이다. 1924년에서 1930년까지 조선총독부에서 토목 기사로 근무하였으며, 1925년 5월에 부산 영도 다리 설계에 참여하였다. 일본 유학 시절 차를 접한 이후 다도 생활을 평생의 반려로 삼게 되었는데, 1...
-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민족 예술가이자 문화 운동가. 최정완(崔楨玩)은 본관이 합천(陜川)이다. 1960년 8월 25일 경상남도 합천군 안의면 금천리 167번지에서 아버지 최재수와 어머니 강갑인의 3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1967년 3월 3일 안의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같은 해 12월에 부산동신국민학교로 전학하면서 부산으로 이주하였다. 1973년 부산 남중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