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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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圭煥 |
영어음역 | Yi Gyuhwan |
이칭/별칭 | 성파(星波)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진 |
[정의]
부산광역시에서 활동한 영화감독.
[활동 사항]
이규환(李圭煥)[1904~1982]의 아호는 성파(星波)이다. 1904년 2월 28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보정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의숙(徽文義塾)[현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1918년 대구 계성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였다. 이규환은 이듬해 일어난 3·1 운동에 참여하여 경상남도 밀양으로 피신하였다. 1922년 일본영화예술연구소에서 6개월간 수학하였다. 1927년 이규환은 부산에서 미국 할리우드로 가려 했지만 도중에 목적지를 바꾸어 중국 상하이로 갔다. 상하이에서 첫 영화 「영육난무(靈肉亂舞)」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일본으로 가서 교토의 신코키네마촬영소에서 3년 동안 연출 수업을 받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 1932년 이규환은 나운규(羅雲奎)와 문예봉을 주인공으로 한 「임자 없는 나룻배」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이후 여러 편의 영화를 발표하고, 1937년 성봉영화사를 설립하였다. 이 무렵 이규환의 영화 가운데 주목을 받았던 것은 1937년 감독한 영화 「나그네」로, 밀양강 기슭에 자리한 어촌을 배경으로 풍비박산된 한 가족의 비극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렸다. 일제 말기인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규환은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기울기 시작한 가세 속에서 농부인 부모를 외면했던 두 아들의 개심을 그린 「창공」[1941]을 내놓고, 해방이 될 때까지 4년 동안 극단 건설무대[단장 김소랑]의 연출을 잠시 맡은 것을 제외하면 메가폰을 잡지 않았다.
이는 이규환이 일제 말기의 이른바 국책 영화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대신 이규환은 징용장을 발부받고 경기도 평택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이규환은 징발된 1천여 명의 동포와 함께 비행장을 닦았다. 새벽에 나가 밤에 돌아오는 중노동이었으나 1년 반을 견뎌냈다. 이는 이규환의 나이 불혹인 마흔 살 때의 일이다. 해방된 지 1주일 후에 이규환은 상경하여 재기를 준비하였다. 그 첫 번째 결실이 바로 김영수 원작·각색으로 흥행에 크게 성공한 아동 영화 「똘똘이의 모험」[1946]이었다. 이후 그는 잇달아 연출의 봇물을 터트렸다.
이규환은 부산과는 많은 인연을 가진 감독이었다. 부산 출신의 촬영 기사인 양세웅(梁世雄)과 많은 작품을 함께했고, 부산에서 제작하고 촬영한 작품도 다수였다. 「한강」[1938], 「갈매기」[「해연(海燕)」][1948] 등 다수의 작품이 양세웅과 호흡을 맞춘 작품이었다. 이 가운데 「갈매기」는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의 용두산 공원 입구에 설립한 예술영화사의 제1호 작품으로, 부산 수영의 소년 교화원을 중심으로 촬영한 작품이었다. 「갈매기」는 1948년 12월 12일 부산 부민관에서 개봉되었고, 예술영화사가 발행한 영화 전문지 『예술영화』[제1호]에 「이규환의 ‘해연(海燕)’ 연출기」란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다. 1955년 영화 중흥기의 신호탄이 되었던 이규환의 히트 작품인 「춘향전」은 부산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영화로, 이규환을 정상의 자리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1982년 7월 4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규환은 계속하여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저술 및 작품]
대표 작품으로는 「임자 없는 나룻배」[1932]·「밝아가는 인생」[1933]·「바다여 말하라」[1935]·「그 후의 이도령」·「무지개」[1936]·「나그네」[1937]·「새 출발」[1939]·「창공」[1941]·「똘똘이의 모험」[1946]·「그들의 행복」·「민족의 새벽」[ 1947]·「갈매기」[1948]·「춘향전」[1955]·「심청전」[1956]·「청춘비가」[1958]·「애련의 꽃송이」[1959]·「낙화암과 삼천궁녀」[1960]·「정」[1962]·「상처받은 두 여인」[1963]·「배따라기」[1973]·「남사당」[1974]이 있다. 이 가운데 「임자 없는 나룻배」·「밝아가는 인생」·「그 후의 이도령」·「나그네」·「새 출발」·「창공」·「그들의 행복」·「심청전」은 이규환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그 후의 이도령」·「무지개」·「그들의 행복」 등은 이규환이 제작한 작품이고, 「임자 없는 나룻배」·「바다여 말하라」·「그 후의 이도령」·「무지개」·「새출발」·「창공」·「똘똘이의 모험」·「그들의 행복」·「민족의 새벽」·「돌아 온 어머니」·「심청전」·「애련의 꽃송이」 등은 그가 편집한 작품이다.
[상훈과 추모]
1990년 제1회 이천 춘사 대상 영화제에서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