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4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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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世雄 |
영어음역 | Yang Seung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진 |
[정의]
부산 출신의 영화 촬영 기사.
[활동 사항]
양세웅(梁世雄)[1906~?]은 1906년 12월 11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제2공립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의 동아키네마에 입사하여 촬영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였다. 1932년 동아키네마에서 카메라맨으로 승진하고, 「눈물의 빛」·「두 개의 유방」·「그 밤의 노래」 등을 촬영하여, 일본에서 정식 촬영 기사로 활동한 최초의 조선인이 되었다. 1935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박기채가 감독하고 영화시대사가 제작한 영화 「춘풍」을 통해 한국에서 촬영 기사로 데뷔하였다. 1939년에는 김유영 감독의 통속극으로, 신극 운동 단체 극예술연구회의 핵심 회원인 서항석·유치진·이해랑 등이 대거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던 영화 「애련송」의 촬영을 맡았다.
1940년 조선인영화협회 창설 당시 평의원을 지내고, 1941년 조선인영화협회 이사를 지냈다. 1948년에는 부산 광복동의 용두산 입구에 설립된 예술영화사에서 1호 작품으로 제작한 이규환 감독의 영화 「갈매기」를 촬영하고, 이후 15편의 영화를 촬영하였다. 이 가운데 6편이 이규환 감독의 영화였다. 1930년대와 1940년대를 통해 양세웅은 이명우·손용진·김학성 등과 함께 이름이 났으며, 평소 술·음악·독서·독일어를 좋아하였다. 양세웅은 6·25 전쟁 중에 실종되었는데, 납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저술 및 작품]
촬영 작품으로는 「춘풍」[1935]·「순정 해협」[1937]·「군용 열차」·「한강」[1938]·「애련송」·「새 출발」·「처녀도」[1939]·「반도의 봄」·「창공」[1941]·「우르러라 창공」[1943]·「우리들의 전쟁」·「감격의 일기]」[1945]·「똘똘이의 모험」·「안중근 사기」[1946]·「그들의 행복」·「민족의 새벽」[1947]·「갈매기」[1948] 등이 있으며, 편집 작품으로는 「순정 해협」·「한강」·「처녀도」·「애련송」이 있다.
저술로는 예술영화사에서 만든 영화 전문지 『예술 영화』1에 쓴 「양세웅의 아메리카영화의 촬영 기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