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279
한자 吳濟峯
영어음역 Oh Jebong
이칭/별칭 오덕개(吳德介),청남(菁南),동률(東律),제봉(濟峯)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차밭골로50번가길 5-3[온천1동 204-3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예가
성별
대표경력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심사 위원
출생 시기/일시 1908년 8월 26일연표보기 - 출생
출가 시기/일시 1923년 5월 6일[음력] - 해인사 임환경의 제자로 출가
수학 시기/일시 1927년 - 해인사 강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0년 2월 9일 - 의곡사 주지로 부임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제1회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입선
활동 시기/일시 1955년 - 부산으로 이주
활동 시기/일시 1955년 - 제1회 개인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55년 - 동명서화원 개설
활동 시기/일시 1959년 -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문교부장관상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특선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한국미술협회 부산시 지부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63년 - 눌원 문화상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64년 - 부산시 문화상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65년 - 부산시 문화 위원 및 문화재 위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74년 -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초대 작가 및 심사위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75년~1979년 - 부산시 미술 전람회 운영 위원 및 심사 위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80년 -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서예 부문 심사 위원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90년 - 청남문화재단 창립
몰년 시기/일시 1991년 11월 27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1년 이후 매년 - 오제봉의 서도를 기리는 청남 서예 대상 전국 휘호 대회 개최
추모 시기/일시 2008년 - 추모 문집 『청남 선생의 예술과 인생』 발간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장전리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1동 204-32
학교|수학지 해인사 - 경상남도 합천군
활동지 의곡사 - 경상남도 진주시
활동지 동명서화원 -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1가 6지도보기

[정의]

부산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한 현대 서예계의 거목이자 예서체의 달인.

[개설]

아명은 오덕개(吳德介), 아호는 청남(菁南). 아버지는 오준경(吳俊京)이고, 어머니는 나복련(羅福連)이다.

[활동 사항]

오제봉(吳濟峯)[1908~1991]은 1908년 8월 26일 경상북도 금릉군 증산면 장전리[현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장전리]에서 2남 6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2년 서당 도영재(道英齋)에서 한학을 익혔다. 1923년 음력 5월 6일에 해인사 승려 임환경(林幻鏡)의 제자로 출가하여 불경과 서예를 익혔고, 동률(東律)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해인사에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화봉(華峰) 유엽(柳燁), 동봉(東峰) 하동산(河東山), 금봉(錦峰) 최범술(崔凡述) 등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1927년 사교과(四敎科)와 대교과(大敎科)를 마치고 강원을 졸업할 때 임환경이 법호를 내렸는데, 그것이 이후 그의 이름이 된 제봉(濟峯)이었다. 1930년 2월 9일 오제봉진주 비봉산의 의곡사(義谷寺) 주지로 부임하였는데, 그로 인해 의곡사는 서화인의 집합 장소이자 진주에 온 시인과 묵객이 반드시 찾는 곳이 되었다. 1939년 12월 9일 진주 호국사에서 부산 기장군 출신의 박남용과 결혼하였다.

1955년 오제봉은 부산으로 이주하여, 대각사(大覺寺)의 주지 맥문(麥門) 김홍경(金弘經)을 비롯한 지인의 도움으로 서예가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에 오제봉부산시 중구 광복동미화당 백화점에서 제1회 개인 작품전을 개최하여 좋은 성과를 얻었다. 이에 고무된 오제봉은 안과 의사이자 서예가인 운여(雲如) 김광업(金廣業)과 함께 대각사 안에 동명서화원을 열었는데, 이는 부산 최초의 서예 학원이었다.

이후 경남고등학교·경남상업고등학교[현 부경고등학교부산여자고등학교·영남상업고등학교·동아고등학교·부산사범학교[현 부산교육대학동아대학교 등에 출강하여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쳤다. 이를 통해 서예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부산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서예를 보급하였다. 또한 부산 지역의 학자와 문인, 지식인과 고승 등과 폭 넓게 교유하면서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에 참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1968년에는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에 3층짜리 살림집을 마련하고 3층에 청남묵연회라는 간판을 내걸었는데, 이는 1990년 제자들에 의해 청남문화재단으로 계승되었다.

한편으로 오제봉은 1949년 9월 20일 제1회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서 입선한 이후 해마다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 출품하고, 1962년 1월 10일과 1968년 4월 30일 부산시 공보관, 1963년 11월 14일 진주, 1964년 4월 24일 서울 중앙 공보관, 1965년 8월 16일 경상남도 충무, 1979년 4월 11일 부산 로타리 화랑 등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1963년 12월 13일 ‘부산-대구 합동 서화전’과 1974년 9월 2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하는 원로 작가전 및 1975년 12월 해외 9개국 순회전에 참가하는 등 만년에 이르기까지 글씨 쓰기와 서예 연구를 계속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오제봉은 1961년 11월 제1회 경남 재건 예술제 초대 작가와 서예부 심사 위원으로 위촉받았으며, 1962년 한국미술협회 부산지부장, 1964년 1월 19일 한국미술협회 부산지부 고문을 역임하였다. 1965년 6월 제1회 대한민국 국민 미술전 운영 위원 및 초대 작가, 9월 20일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추천 작가, 12월 15일 부산시 문화 위원 및 문화재위원, 1974년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초대 작가 및 심사 위원으로 위촉받아 활동하였다.

1975년 11월 제1회 부산 미술 전람회 운영 위원 및 심사 위원으로 위촉된 이래 1979년까지 부산 미술 전람회 운영 위원을 지냈고, 1978년부터 1979년까지 경상남도 미술 전람회 심사위원장 및 서예 부문 심사 위원, 1978년 경상북도 미술 전람회 심사 위원, 1979년 제1회 신라 미술 대상전 심사 위원, 1980년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서예 부문 심사위원장, 1984년 대한민국 미술 대전 서예 부문 심사 위원을 역임하였다. 이외에 영남 서예인 연합전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90년 부산시립박물관에 서물(書物) 등 1,493점을 기증한 후 이듬해인 1991년 11월 27일 오제봉은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인 1993년 8월 25일에 부인 박남용은 부산대학교 발전 기금에 병풍 등 서물 800점을 기탁하였다. 오제봉은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으며, 제자 가운데 대통령상 수상자, 특선, 입선자를 포함해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를 거친 서예 작가만 5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저술 및 작품]

오제봉은 평생에 걸쳐 작품 활동을 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가운데 초기의 작품은 1925년에 쓴 것으로 현재까지 해인사 관음전에 현판으로 걸려 있는 추사체의 작품이다. 오제봉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1949년 제1회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 출품한 삼베에 표구한 작품으로 입선하여 화제를 낳았다. 이후 그는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 여러 차례 입상하는 한편 전국 곳곳에 작품을 남겼다.

부산 용두산 공원이순신 장군 동상의 비명, 진주 논개 비석과 촉석루(矗石樓) 영남제일형승(嶺南第一形勝) 대액, 속리산 법주사 관음암 아미타불 대액, 강릉 김시습(金時習)의 청간사(淸簡祠) 액자 및 주련(柱聯)[사찰의 기둥에 붙어있는 편액의 문구], 의령 곽재우 임진전적비 비문, 충무 남망산 이순신 장군비 비문, 충무 세병관(洗兵館)의 지과문(止戈門) 대액, 속리산 법주사 관음암 관세음보살 대액, 밀양 표충사 대액, 양산 통도사 정법안장(正法眼藏) 대액, 태종대(太宗臺) 비문, 해인사 지월 대종사 행적비(指月大宗師行蹟碑), 의령 백산 안희제 선생 추념비 비문, 의령 곽재우 장군 사당 홍의문(紅衣門) 대액, 선산 도리사 운봉 대종사 행화비 비문, 문경 대승사 사적비(大乘寺寺跡碑) 전액, 해인사 용탑전 칠불보궁(七佛寶宮) 및 감로당 액서, 다솔사 응진전 주련, 서울 청룡사(靑龍寺) 대액, 청도 운문사 나한전 주련, 해남 대흥사 일지암 초의 선사(草衣禪師) 다실 및 주련, 서울 도련사 주련, 부산 범어사 액자 및 주련, 경주 불국사 액자 및 주련,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성덕대왕 신종명(聖德大王神鐘銘) 전문 및 고구려 광개토대왕비 전문 병풍서(廣開土大王碑全文屛風書), 부산 도솔산 내원정사 대적광전 대액 및 주련, 부산 동래 군관청(軍官廳) 대액, 해남 대흥사 일주문 대액, 두륜산 대흥사 및 호국문 대액, 고성 옥천사 일주문 및 연화산 옥천사 대액, 부산 대각사 법당 주련, 서울 덕수궁 가락당(歌樂堂) 액서, 인천 청량산 흥륜사 사리굴 대액, 울산 동축사 대액, 언양 석남사 장엄적멸도량과 침계루 대액 및 주련, 부산세관 개관 100주년 기념비 대액 및 비문 등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외에 저작집으로는 서예 지침서인 『서예 입문』[태화출판사, 1977],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서법 묘리를 연구하여 글씨를 수록한 『청남고도관(菁南古道觀)』[일지사, 1984], 『추사 김정희 선생 아호 581과 발견집』[1991],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출품 작품 등 285점이 수록된 『(청남 오제봉 선생)서예 작품집』[부산대학교, 1999] 등이 있어서 후학들에게 좋은 서체 연구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상훈과 추모]

1949년·1956년·1957년·1958년·1961년·1962년·1964년·1967년 등 10회에 걸쳐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서 입선하였으며, 1960년에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였다.

1959년 10월 28일에는 제8회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문교부 장관상 수상, 1963년 6월 15일에는 제5회 눌원 문화상 수상, 1964년 6월 4일에 부산시 문화상 수상, 1986년 5월 16일에 국제문화협회가 수여하는 대한민국 사회교육 문화상 수상, 1986년 세계대학총장회가 수여하는 제5회 평화상 수상, 1989년 7월 제1회 부산상공회의소 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다. 또 1990년 설립된 청남문화재단은 매년 청남 서예 대상 전국 휘호 대회를 개최하여 오제봉의 서도를 기리고 후진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2008년에는 추모 문집 『청남 선생의 예술과 인생』[청남문화]이 발간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