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5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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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周璟 |
영어음역 | Yi Jugyeong |
이칭/별칭 | 이주경(李酒鯨)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희진 |
[정의]
부산 지역 최초의 영화에 출연한 제1호 영화배우.
[활동 사항]
이주경(李周璟)[1900~1938]은 1900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부산공립보통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남은행 부산본사에서 출납계 직원으로 재직하였다. 1924년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였는데,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제작한 최초의 영화인 「해의 비곡」이었다. 조선키네마주식회사는 1924년 부산에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사였다. 이 영화에서 이주경이 맡은 배역은 나무꾼의 딸 이월화를 사랑하여 임신시키는 이호영 역으로, 매우 비중 있는 조연이었다.
이어서 이주경은 나운규(羅雲奎) 주연의 「총희의 연」[일명 「운영전」]에 출연하였다. 「총희의 연」은 부산 동래 등지에서 촬영한 궁중 시대극으로, 여기서 이주경은 안종화(安鍾和)가 맡았던 김 진사의 충복 특이 역으로 분하여 마지막에 김 진사를 구하기 위해 군노들에게 죽음을 당하는 역할을 해냈다.
이주경의 연기를 본 동료 연기자 윤갑용은 표정이 과장되지만 근육이 좋아 활극 액션에 잘 어울린다고 하였으며, 노력하면 장래 성장을 내다볼 수 있는 배우라고 평가하였다. 사진관을 하던 이주경의 동생 이주환은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네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으로 1925년에 상영된 「촌의 영웅」 [상영 제목은 「동리의 호걸」]에서 촬영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주경은 웅장한 필력으로도 이름이 알려졌는데, 명함에 이주경(李酒鯨)[술고래]이라 찍어 스스로 대주가임을 알리는 데서도 호방한 기질이 잘 드러나고 있다.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해산하자 이주경은 영화 동인회를 만들어서 경상도판 「춘향전」과 「초립동」 등의 각본을 썼으며, 서울에서 내려온 변기종(卞基鍾) 등 연극인들을 돌보기도 하였다.
한편 이주경은 부산 극장에서 소인극을 개최하여 입장료 수입으로 부산 청년 회관 건립에 발 벗고 나서기도 하였다. 평소 기생방 출입이 잦았는데, 만년에 경화라는 동래권번의 기생과 동거할 때는 건강이 매우 나빠지고 재정적으로도 파산 상태였다. 본처와의 사이에 어린 딸 하나가 있었을 뿐, 고독과 빈곤 속에서 죽음에 쫒긴 이주경은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비참한 상태에서 1938년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출연 영화로는 「해의 비곡」[1924]·「총희의 연」[1925]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