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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841
한자 黃圭應
영어음역 Hwang Gyueung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영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화가
성별
대표경력 경찰
출생 시기/일시 1928년 1월 20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5년 - 서울 중동중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45년 - 춘천사범학교 강습과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강동초등학교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부산 미술 전람회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50년 - 경찰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59년~1985년 - 군록회 회원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61년 - 경상남도 재건 예술제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앙데팡당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77년 - 경찰 퇴직
활동 시기/일시 1979년~2000년 - 부산 수채화협회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81년~2000년 - 부산 미술제 참여
활동 시기/일시 2001년 - ‘부산 미술의 계보 찾기전’ 참여
활동 시기/일시 2004년 - 제11회 개인전 개최
몰년 시기/일시 2004년 9월 24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문중리
학교|수학지 중동중학교 - 서울특별시
학교|수학지 춘천사범학교 - 강원도 춘천시
활동지 강동초등학교 - 강원도 강릉시
활동지 내성초등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72지도보기
활동지 경찰 - 부산광역시
활동지 군록회 - 부산광역시

[정의]

6·25 전쟁 이후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경찰.

[활동 사항]

황규응(黃圭應)[1928~2004]은 1928년 1월 20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문중리에서 태어났다. 1945년 서울의 중동중학교를 졸업하고 춘천사범학교 강습과를 다녔다. 유년 시절 일광면 일대에서 선주(船主)였던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난 황규응은 공부보다 그림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본격적인 그림 수업은 서울 중동중학교에서 미술 선생님의 지도를 받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당시 동창이었던 박순천이 조선 미술 전람회에 정물화를 출품하여 입선한 일은 황규응이 평생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춘천사범학교 강습과 시절에 강원도 강릉시의 강동초등학교에 교사로 임용되어 3개월 근무하였다. 당시는 태평양 전쟁 중이어서 학생 신분으로도 교사로 임용될 수 있었다.

그 후 부산으로 내려와 동래 내성초등학교에서 정식으로 교편을 잡게 되었는데, 그때 미술 연구 발표를 맡아하면서 그림에 본격적인 입문을 하게 되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황규응은 김봉진과 청년방위대 문관으로 근무하다가 조직이 해산되자 경찰에 몸담게 되었다. 이로부터 27년간 형사로 근무하다 50세에 퇴직을 하였다. 경찰 생활을 하면서도 개인전을 열 정도로 그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이 시기에 황규응양달석(梁澾錫)·서성찬(徐成贊) 등과 교류를 가졌다.

1959부터 1985년까지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 단체인 군록회의 회원으로 참여하고, 1960년부터 2004년 2월까지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피카소 화랑에서 11번째 개인전을 열기까지 화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개인전 외에도 1949년 부산공회당에서 개최한 부산 미술 전람회, 1961년 부산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경상남도 재건 예술제, 1962년 부산시 공보관에서 개최한 앙데팡당전, 1979년부터 2000년까지의 부산 수채화협회전, 1981년부터 2000년까지의 부산 미술제, 2001년 ‘부산 미술의 계보 찾기전’ 등에 참여하였다.

황규응은 주로 수채화를 그렸는데 그것은 김남배(金南倍)가 일본 신문에서 찢어온 종군 화가의 수채화 그림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황규응은 비록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독특한 자신만의 화풍을 보여 주었다. 그의 수채화는 특유의 맑은 화면을 유지하면서 부산의 풍경을 소재로 일관된 화풍을 담아냈다.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황규응의 풍경은 서정적인 감수성을 느낄 수 있지만 이는 모두 실제 풍경을 보고 그리는 사생이라는 과정을 통해 구현되었다. 마지막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던 황규응은 한국 근대 수채화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2004년 9월 24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대표 작품으로 「살구받기 놀이」[37.3×54㎝ 종이에 수채, 1957]·「송도 케-블카」[37.3×53㎝ 종이에 수채, 1965]·「빨래터」[37.3×52㎝ 종이에 수채, 1969]·「해운대 노을」[54.5×74.5㎝ 종이에 수채, 2000] 등이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옥** 황규응은 화가이므로, ,<작곡가>항목에서 <화가>로 옮겨야 함
  • 답변
  • 부산역사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사항은 수정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1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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