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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680
한자 李容植
영어음역 Yi Yongsik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농악인
성별
대표경력 부산 농악 장구 예능 보유자
출생 시기/일시 1948년 12월 25일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86년 - 부산풍물패사물놀이 창단
활동 시기/일시 1994년 6월 3일 - 부산 농악 장구 예능 보유자로 지정
몰년 시기/일시 2002년 3월 13일 - 사망
거주|이주지 이용식 거주지 -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2가 19
거주|이주지 이용식 이주지 -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2가 233

[정의]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농악 예술인.

[활동 사항]

이용식(李容植)은 1948년 12월 25일 충청북도 영동군의 이명철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한 해 뒤인 1951년 1·4 후퇴 때 아버지를 따라 부산광역시 서구의 피난민촌인 아미동에 정착하였다. 이후 아미동을 떠나지 않았으니, 부산의 아미동에서 거의 평생을 산 셈이다.

이용식의 아버지 이명철[1973년 사망]은 대단한 풍물재비로 명성이 높았는데, 부산에 정착한 이듬해인 1952년 서구 아미동 산19번지 자신의 집에 ‘아미농악’이란 입간판을 내걸었다. 그리고 상쇠에 이명철 자신이, 징 정상렬, 소고 김차술과 최상택을 모으고, 소리에 유삼룡·김동순[김종대 아버지]·조승현·천해수·조귀봉·정윤화 등으로 제법 모습을 갖춘 단체를 구성하였다. 1962년 이들은 겨우 11명의 적은 인원으로 신라 문화제 제1회 농악 경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며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꽹과리, 징, 장구, 북소리와 함께 자라난 이용식이 풍물놀이판에 합류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용식은 아버지 이명철의 신명을 그대로 이어받아 조승현을 장구 스승으로 삼고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걸립패의 일원이 되었다. 1959년 1월 11세 나이로 이용식은 아미농악단에 정식으로 입단하였다.

이후 이용식은 부산에 농악[풍물]을 정착시키고 널리 보급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이러한 노력에는 정상렬의 아들인 정우수[1950년생]와 김동순의 아들인 김종대[1954년생]가 든든한 대들보가 되어 함께하였다. 이용식, 정우수, 김종대 등이 꾸준히 활동한 결과 1980년 부산 농악은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1986년 이용식, 정우수, 김종대 등은 ‘부산풍물패사물놀이’를 창단하여 부산에 풍물 굿 붐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1994년 6월 3일 이용식은 부산 농악[전 아미 농악]의 장구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정우수와 김종대 역시 각각 부산 농악의 북 예능 보유자와 소고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용식은 풍물놀이에 필요한 악기는 모두 잘 다루었는데, 풍물 전수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모두가 어울려 격의 없이 밥을 같이 먹으며 ‘사람 냄새’ 나는 독특한 풍물 전수 방식을 구사하였다. 이는 농악이라는 장르 자체가 발생사적으로 볼 때 노동 현장에서 출발하였고, 공동체 의식 없이는 해결되지 못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에 이용식은 함께 식사를 한다든가, 함께 어울려 여러 일을 도모하는 것을 대단히 중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 이용식은 부산 민속계의 놀이판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갔다. 그가 중심이 된 연희 단체 부산풍물패사물놀이는 김종대, 하정규, 정은희, 김호순, 강정숙, 조갑용 등이 어울려 결성하여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또한 최정민, 최의철, 박현호, 김상헌, 이주헌, 김한동 등의 제자를 배출하였다. 이 가운데 김상헌이 현재 부산풍물패사물놀이의 단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부산풍물패사물놀이의 놀이 정신을 이어 가는 단체로 ‘이음쇠’[회장 최홍영]가 있다. 그동안 이음쇠의 풍물 강습회를 거쳐 간 강습 인원은 2010년 현재 약 5,600명에 이르며, 기수는 42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용식이 뿌려 놓은 풍물계의 민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용식은 2002년 3월 13일 54세에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가족으로는 아내 장명구와 이민희, 이경아 두 자녀를 두었다.

[상훈과 추모]

1994년 6월 3일 부산 농악의 장구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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