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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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珉 |
영어음역 | Heo Min |
이칭/별칭 | 허응중(許應中),운전(芸田)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선학 |
[정의]
부산에서 활동한 문인 화가.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본명은 허응중(許應中), 호는 운전(芸田)이다.
[활동 사항]
허민(許珉)[1911~1967]은 1911년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덕촌리 308번지에서 태어났다. 영남의 거유 김황(金榥)에게 한학을 배우고, 김규진과 김은호 등의 문하생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1934년 제13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세필(細筆) 채색의 「춘난(春暖)」으로 입선하고, 1935년 제14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소부입상(少婦立像)」으로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제15회~제16회, 제19회, 제21회~제23회에서 연속 입선을 한 기량 있는 작가였다. 1941년 제4회 후소회전에 동인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후소회전에 나온 작품 「적광(寂光)」에 대해 윤희순은 ‘맑고 윤택한 정서의 열매’라고 호평을 하였다.
6·25 전쟁으로 부산에 자리를 잡고, 1957년 이후 부산·마산·진주·충무 등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58년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서 「목단(牧丹)」으로 입선하였다. 같은 해 부산 국제신보사 전시실에서 허민 제1회 동양화전을 개최하고[도록에는 1957년 3월 광복동 미화당 화랑이라고 되어 있다], 1963년 3월 부산 공보관에서 허민 동양화전을, 1964년 충무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동양화에서 흔히 목격되는 ‘화훼초충도’에서 보듯 작은 것들에 대한 섬세한 관찰의 시점은 산수화나 풍경화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허민의 1966년 작품인 「분노」는 바다라는 원거리 대상을 소재를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접근이 근거리에서 관찰한 접사적 시점을 채용하고 있다. 이런 시점은 한국화의 전통에서 보기 드문 것이며, 1960년대의 한국화에 불어 닥친 추상화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노라는 심리적 상태를 서양의 추상화에 기탁하지 않고 전통적 수묵의 방법을 통해서 드러내려 했을 때의 조형적 어려움을 허민은 접사적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화면 가득 차 있는 파도의 위용을 개인적 심정 뿐 아니라 1960년대의 시대적 위기감과 울분을 함께 보여 주면서 한국화의 현대화라는 방법적 접근까지 확인케 해주는 작업이었다.
허민은 이런 작품 외에 산수화나 화조화 등 전통적인 화과(畵科)에 충실한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허민은 한문에 밝아 『열하일기(熱河日記)』·『동의보감(東醫寶鑑)』을 완역하였으며, 그런 교양을 바탕으로 수묵 담채화를 제작한 당대 마지막 문인 화가였다. 허민은 1967년 부산시 중구 부평동 4가 59번지 사위 이재용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화장하여 다대포 바다에 재가 뿌려졌다.
[저술 및 작품]
대표 작품인 「춘난」[1934]·「소부입상」[1935년]·「모녀상」[1936]·「가투(歌鬪)」[1937, 가투는 화투의 오기인 것으로 보임]·「도원유수」[1940]·「신선도」·「목란도」·「산수도」·「일해만물상」·「내금강만폭동」·「화조」·「어락도」등 125점이 『운전 허민 서화집』에 실려 있다. 국역한 책으로 『동의보감』[국제인쇄주식회사, 1962]이 있다.
[상훈과 추모]
작고 10주기를 맞은 1977년에 부산 로타리 화랑에서 허민 유작전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