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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2868
한자 金允泰
영어음역 Gim Yuntae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기장
성별
대표경력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3호 사기장
출생 시기/일시 1936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64년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 단양요업 건립
활동 시기/일시 1973년 -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면 윤직 3리에 상주요 건립
활동 시기/일시 1976년 - 경상남도 양산군 기장면 교리 279-2로 상주요 이전
활동 시기/일시 1979년 - 제4회 전승 공예 대전 입선
활동 시기/일시 1980년 - 기타규슈 산업 무역 동예전 출품, 아사히신문사, KGB 규슈방송 감사장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81년 - 부산 국제 회관 청화 백자 전시, 규슈 구마모도 스루야 백화점 전시, 규슈 하가다 이즈츠야 백화점 전시, 오무다 이즈츠야 백화점 전시, 규슈 도예 작가전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82년 - 고베 소고 백화점 전시, 오사카 소고 백화점 전시
활동 시기/일시 1983년 - 후쿠오카 무라오카야 갤러리 전시
활동 시기/일시 1984년 - 경상남도 전승도예협회 전시[창원 KBS], 보건사회부 장관 감사패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86년 - 부산일보사[불우 이웃 돕기] 10인전
활동 시기/일시 1988년 - 화가 백포 곽남배 합작 전시[부산 호텔]
활동 시기/일시 1989년 - 전승도예회원 전시[창원 KBS]
활동 시기/일시 1990년 - 기타규슈 고쿠라 이즈츠야 백화점 전시
활동 시기/일시 1991년 -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 전시
활동 시기/일시 1993~1995년 - 한국 사기장인 7인전[경복궁 공예관]
활동 시기/일시 1996년 - 부산·경남 한국전통도예회원 축제전, 부산·경남 한국전통도예협회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2001년 - 고려 다완 재현 개인전[30여 종류의 고려 다완 및 전통 도예품] 개최
활동 시기/일시 2005년 3월연표보기 -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3호 사기장으로 지정
활동 시기/일시 2006년 - 기장군 문화 대상 수상
몰년 시기/일시 2012년 2월 9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김동진 출생지 - 경상북도 문경군 동로면 적성리
거주|이주지 상주요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기장대로 1201-20[원리 421-1]지도보기
묘소 경주 공원 묘원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산269

[정의]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3호 사기장.

[활동 사항]

김윤태(金允泰)[1936~2012]는 경상북도 문경군 동로면 적성리에서 할아버지[김상희] 때부터 가마를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가마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장난 외에는 특별한 놀이가 없었을 정도로 도자기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아버지 김종원이 일찍 사망하여 어릴 때부터 숙부인 김창동에게 생활 도자기 제조법을 익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어 충청북도 단양까지 불려가 일을 할 정도였다.

1964년 처가인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에 단양요업을 건립하여, 생활 도자기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중 그의 재능을 알아차린 부산의 한 골동품상이 찾아오면서 다완(茶碗)과 함께 하는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이 골동품상은 우리나라에서는 ‘막사발’이라고 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일본에서는 차 사발로 귀하게 여기는 다완의 도록을 내보이며 재현해 볼 것을 권유하였다.

도록만 갖고 고려 시대의 다완을 재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수백 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던 집념이 결국 수백 년을 뛰어넘는 조상의 지혜를 깨닫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어떤 흙과 유약이 어떤 자기에 사용되는지 몸소 체득한 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으로부터 주문이 쇄도하자 1973년 다완용으로 쓰이는 양질의 흙이 풍부한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면 윤직 3리상주요(尙州窯)를 건립하였다. 가마 명칭이 ‘상주요’가 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이 부산을 통해 끊임없이 일본으로 고가에 팔려 나가자, 3년 뒤인 1976년 기장군으로 작업장을 옮겼다. 1980년부터는 일본 각지를 돌며 작품 전시회를 열었으며, 전시회는 일본의 다완 애호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중반에야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김윤태는 가마에 불을 지피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섭씨 850~900℃ 초벌구이를 한 뒤 1,250~1,300℃의 고온으로 재벌구이를 하고 나면 가마에 넣은 다완 가운데 쓸 만한 작품은 평균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심지어 작품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박한 듯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양을 자랑하는 고려 시대 다완은 받침대를 적당히 다듬은 뒤 유약을 충분히 발라도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품 활동 외에도 1996년 부산·경남 한국전통도예협회 회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고, 2003년 경기도 세계 도자 비엔날레에서 전통 가마 제작 책임 감수자로 위촉받아 일하였다. 그리고 2005년 3월 전통 가마 제작 기술과 고려 다완 재현으로 부산광역시에서 무형 문화재 제13호 사기장에 지정되었다. 2006년 5월 6일 기존의 상주요 자리가 도로 개설로 헐리면서 기장군 일광면 원리 421-1번지에 새 가마를 지었다.

2012년 2월 9일 향년 76세의 나이로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윤태의 이 같은 예술혼은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해져 아들 김영길[동부산대학 생활도예과 교수]은 일본의 요업대(窯業大)를 졸업한 뒤 울산에서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도예 작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저술 및 작품]

김윤태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국보가 된 이도 다완[井戶茶碗] 등 현재 문헌으로 남아 있는 다완 30여 종을 완벽하게 재현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망뎅이[혹은 망생이]라는 원통형 내화 벽돌을 이용해 만드는 가마 제작 기술은 우리나라 최고로 평가받았다.

또 적당한 흙을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불순물을 제거하는 ‘톳물 받기’, 흙을 반죽하고 기포를 없애는 ‘꼬박 밀기’, 물레에 올려놓고 모양을 만드는 ‘성형’, 성형 과정에서 생긴 흠을 제거하는 ‘물메질’, 유약을 만들어 바르는 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불 때기와 가마를 만드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도자기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해낼 수 있는 인물이다.

김윤태가 생전에 한 전시는 다음과 같다. 1980년 기타규슈 산업 무역 동예전 출품, 1981년 부산 국제 회관 청화백자 전시, 1981년 규슈 구마모토 스루야 백화점 전시, 규슈 하가다 이즈츠야 백화점 전시, 오무다 이즈츠야 백화점 전시, 규슈 도예 작가전 출품, 나가사키 하마야 백화점 전시, 1982년 고베 소고 백화점 전시, 오사카 소고 백화점 전시, 1983년 후쿠오카 무라오카야 갤러리 전시가 있다.

이 외에도 1984년 경상남도 전승도예협회 전시[창원 KBS], 1986년 부산일보사[불우 이웃 돕기] 10인전, 1988년 화가 백포 곽남배 합작 전시[부산 호텔], 1989년 전승 도예 회원 전시[창원 KBS], 1990년 기타규슈 고쿠라 이즈츠야 백화점 전시, 1991년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 전시, 1993~1995년 한국 사기장인 7인전[경복궁 공예관], 1996년 부산·경남 한국전통도예회원 축제전, 2001년 고려 다완 재현 개인전[30여 종류의 고려 다완 및 전통 도예품] 등 활발한 전시 활동을 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산269번지 경주 공원묘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9년 제4회 전승 공예 대전 입선에 입선하였고, 1980년 『아사히 신문』과 KGB 규슈방송, 1984년 보건사회부 장관 감사패를 수상하였다. 2006 기장군 문화 대상, 2011년 10월 14일 제54회 부산광역시 문화상 전통 예술 부문에 수상하였다. 2012년 7월 18일~8월 26일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작품을 전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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