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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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千峰 |
영어음역 | Cheon Bong |
이칭/별칭 | 천상률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 3가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창욱 |
[정의]
부산 출신의 대중가요 작사가.
[활동 사항]
천봉(千峰)[1923~1989]의 본명은 천상률이다. 1923년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 3가에서 태어났다. 부산 토박이 천봉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자갈치 어시장에서 얼음 소매업을 하는 부모를 도우며 남몰래 독학으로 1941년 18살 때 경상남도 순경 채용 시험에 합격하여 한때 부평파출소에서 경찰로 근무하였다. 천봉은 틈틈이 시와 소설을 탐독하고 악극단 공연에 열광하며 수첩에 노랫말을 적기도 하는 괴짜 순경이었다. 8·15 광복 후 천봉은 미군 정기 경찰 채용 시험에 또 다시 합격하여 그 자리를 지켰다.
1948년 「한 많은 천마산」으로 대중가요 작사가로 데뷔한 천봉은 6·25 전쟁 때에 부산으로 내려온 연예계 인사들과 꾸준히 교류하였다. 1952년 초에 영남 극장 사장의 요청으로 영화와 악극단 공연 등을 섭외하는 사업 부장을 맡아, 미련 없이 파출소장직을 그만두었다. 이후 본격적인 가요 작사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한복남(韓福男) 작곡의 「피란길 고향길」에 가사를 붙인 것이 최초 히트곡이었다. 이어서 6·25 전쟁 때 일반 대중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 준 「앵두나무 처녀」·「엽전 열닷냥」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곡의 노랫말을 지었다. 한편으로 천봉은 한복남과 콤비를 이루어 최초의 아베크송이라 불리는 노래의 가사를 썼다.
그 밖에도 「부산 행진곡」·「부산을 부른다」와 같이 부산을 소재로 한 다수의 가사도 작사하였다. 이런 활동으로 일명 ‘부산 연예계의 대부’로 통하였으며, 1962년부터 1987년까지 25년간 부산연예협회 회장, 1987년부터 1989년 사망할 때까지 부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지냈다. 198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대중가요 「엽전 열닷냥」[1955]·「앵두나무 처녀」[1955]의 가사를 비롯, 「한 많은 천마산」·「피란길 고향길」·「전화 통신」·「부산행진곡」·「부산을 부른다」 등을 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