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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763
한자 金重業
영어음역 Gim Jungeop
이칭/별칭 여천(如泉)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영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현대 건축가
성별
본관 연안(延安)
대표경력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출생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9년 -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41년 - 요코하마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44년 - 조선주택영단의 기사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7년~1985년 -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50년~1953년 - 6·25 전쟁 피난 시절에 부산에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52년 - 제1회 세계 예술가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53년~1956년 - 르 코르뷔지에연구소에서 4년간 수학
몰년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2년 - 서울특별시 문화상 수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5년 - 프랑스 국가 공로 훈장과 슈발리에 칭호 받음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5년 - 산업 포장[건설 유공 부문] 수상
출생지 평양직할시
거주|이주지 서울특별시
학교|수학지 요코하마고등공업학교 - 일본 요코하마 현 요코하마 시
활동지 부산광역시

[정의]

6·25 전쟁 피난 시절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현대 한국 건축계의 선구자.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여천(如泉). 아버지는 김영필(金永弼)이고, 어머니는 이영자(李英子)이다.

[활동 사항]

김중업(金重業)[1922~1988]은 1922년 평양에서 5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군수인 아버지를 따라 강동·중화·성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요코하마고등공업학교[현 요코하마국립대학] 건축학과에 진학하여 파리 에꼴 데 보자르 출신의 나카무라 준베이[中村順平] 주임 교수 밑에서 수석으로 졸업한 것이 1941년이었다. 이후 5년간 도쿄[東京]에서 실무를 익힌 후 1944년에 서울의 조선주택영단(朝鮮住宅營團) 기사가 된 후 서문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중 1946년 단신 월남하여 미군 공사 설계를 맡기도 하다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임 강사로서 도시 계획을 가르치면서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를 만나기 직전까지 김중업은 당시를 풍미했던 모더니즘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시인이자 화가로서의 의지를 꺾지 않았던 김중업은 브루탈리즘(Brutalism)[1950년대 영국에서 형성된 건축의 한 경향으로 우아한 미를 추구하는 서구 건축과 달리 거친 조형을 주장]적인 그림을 즐겨 그렸으며,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나 랭보(Jean-Arthur Rimbaud)의 시에 미쳐서 난해한 시를 곧잘 시도하곤 하였다. 서울에서나 부산 피난 시절에 그가 교류하였던 김광섭·모윤숙·이헌구·유치진·서항석·송지영·구상·오상순·변영로 등의 문인이라든지, 김환기·이중섭(李仲燮)과 같은 화가들의 면면을 보면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의 예술적 경향에 깊이 심취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김중업은 1952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추천으로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유네스코 주최 제1회 세계 예술가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면서 의장단의 일원이었던 르 코르뷔지에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르 코르뷔지에연구소에서의 4년간 수업은 김중업의 건축 작업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던 만큼 우리의 전통성에 대한 인식은 자리 잡을 틈이 없었다. 초기 작품 대부분에서 소위 르 코르뷔지에가 제시했던 모더니즘 건축의 원리를 철저히 따르고자 했던 것도 이러한 경력에서 비롯되었다. 1970년대에는 외국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가 1979년 귀국하였고, 이후 1988년 사망할 때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저술 및 작품]

르 코르뷔지에의 모더니즘를 담은 작품으로 부산대학교 본관[1956], 명보 극장[1956], 건국대학교 도서관[1956]이 있고, 프랑스 시절에 만든 밀바의 집[1954], 살고 싶은 집[1954] 등이 있다. 전통 건축의 디테일이나 조형을 살린 작품으로 人자의 집[1958], 주한 프랑스 대사관[1960], 설원씨 댁[1962], 제주대학 본관[1964], 서산부인과의원[1965], 부산 UN묘지 정문[1966], 이태리 대사관[1967], 3·1 빌딩[1969], 성공회 회관[1974], 육군사관학교 박물관[1981], 진주 문화 회관[1982], 부산 충혼탑[1983], 올림픽 상징 조형물[1988]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62년에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하고, 1965년 주한 프랑스 대사관 설계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 공로 훈장을 받고 슈발리에(Chevalier)라는 칭호를 얻었다. 또 1985년에 산업 포장[건설 유공 부문]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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