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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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文圭 |
영어음역 | Im Mungyu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창욱 |
[정의]
교향악 및 실내악 운동을 벌인 부산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개설]
임문규(林文圭)[1925~2001]는 192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8·15 광복 전에 일본 도쿄[東京]의 일본대학 예술학과를 졸업하였다. 음악 평론가 유신(劉信)이 임문규의 바이올린 소리를 ‘리리칼한 소프트 톤’이라고 말한 것처럼 서정적인 선율과 부드러운 음향이 임문규의 연주 어법의 특징이었다.
[활동 사항]
일본 유학을 마치고 갓 귀국한 임문규의 데뷔 무대는 1947년 부산관현악단의 창단 연주회[4월 14일~4월 15일, 동광초등학교 강당]였다. 부산관현악단은 김학성(金鶴成)이 제자 등 18명을 규합해서 만든 악단인데, 임문규는 이곳의 창단 멤버였던 셈이다. 해군정훈군악대의 자극을 받아 1950년에 육군교향악단이 창단되자 임문규는 김판기[지휘]·김학성[악장]을 비롯한 배도순(裵道淳)·김호현·전성태·백경준·윤이상(尹伊桑)·김희조(金熙祚) 등과 함께 단원으로 참여하였다. 육군교향악단은 육군군악대와 부산관현악단 일부 단원들로 구성된 악단으로, 성남초등학교 자리를 거점으로 활동하였으며, 1956년 11월에 KBS교향악단으로 발전하였다.
1956년에 임문규는 부산대학교 관현악단[지휘 오태균(吳泰均)]과 부산방송관현악단[지휘 한병함]이 발전적으로 통합하여, 창립한 부산교향악단[지휘 오태균]의 핵심 멤버로 참여하였다. 부산교향악단은 매년 2~3회의 정기 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부산의 교향악 활동을 펼치다가, 1962년 안익태(安益泰)의 내부(來釜) 지휘가 큰 계기가 되어 부산시립교향악단으로 창단되었는데, 임문규 역시 여기에 합류하였다. 이 과정에서 임문규는 부산시립교향악단을 창립하기 위해 경남음악협회 내에 신설된 교향악부의 부악장으로 선출되었다. 함께 선출된 이는 악장에 김진문, 부지휘자에 한병함, 정지휘자에 오태균, 교향악부장 한영교 등이었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이 창단된 후 임문규는 악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임문규는 1969년 12월 7일 창단된 ‘메트로 현악4중주단’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실내악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는 1960년 2월 배도순·김광수·백경준·윤이상에 의해 창립된 부산 최초의 실내 앙상블인 ‘부산현악4중주단’이 바뀐 것으로, 1969년 12월 7일 대청장홀에서 제1회 정기 연주회를 열어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세레나데」, 푸치니(Giacomo Puccini)의 「마농레스코」 등을 선보였다. 1975년 임문규는 부산음악협회의 음악 대제전 무대에 전태·전범도와 함께 ‘부산현악3중주단’이라는 이름으로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세레나데」 Op. 8을 연주하였다.
부산에서 교향악 및 실내악 운동을 활발하게 벌인 임문규는 2001년 5월 10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