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681 |
---|---|
한자 | 柳三龍 |
영어음역 | You Samyong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희철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부산 농악」의 명인.
[활동 사항]
유삼용(柳三龍)[1898~1970]은 1930년대까지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지역에서 농악대 활동을 하였다. 이후 1930년대 말부터 8·15 광복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일제하의 민족 말살 정책으로 농악대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광복 후 유삼용을 단장으로 15명 내외의 인원이 모여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에서 곱은돌이농악단을 만들어 걸립 농악을 시작하였다. 이는 「부산 농악」의 발단이 되었고, 유삼용은 「부산 농악」의 창시에 큰 이바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해체되어 6·25 전쟁을 맞았다.
유삼용이 창시에 큰 기여를 한 「부산 농악」의 특징은 첫째로 집돌이와 걸립 농악을 바탕으로 하며, 둘째로 지신밟기에 앞서 당산굿을 치면서 모듬굿과 기제(旗祭)를 지내며, 셋째로 판굿의 연극적 농사굿과 북춤이 돋보이며, 넷째로 버꾸놀음의 기능이 뛰어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부산 농악」을 기초로 1953년 정초에 아미농악단이 창단되었다. 지신밟기·성주풀이·소리[비나리]의 명인이었던 유삼용은 1970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