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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316
한자 李弼雨
영어음역 Yi Pilu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영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영화 촬영 기사
성별
본관 경주
대표경력 영화인협회 부산지부장
출생 시기/일시 1897년 11월 27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07년 - 일본 도쿄 금성중학교에서 수학
활동 시기/일시 1913년 - 우미관 영사 기사 조수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16년 - 일본 오사카 데이코쿠키네마 고사카 촬영소 촬영 기사로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고종황제 인산」 촬영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지기」, 「장한몽」 촬영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단성사 촬영부 전속 기사로 「장화홍련전」 촬영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고려영화사 창립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멍텅구리」 감독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반도키네마 창립
활동 시기/일시 1927년 - 극동키네마 창립
활동 시기/일시 1933년 7월 - PKR 발성장치 개발 성공
활동 시기/일시 1935년 - 「춘향전」 녹음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부산시에 영화촬영소 건립 제의
활동 시기/일시 1964년 - 한국영화인협회 부산지부 초대 지부장 역임
몰년 시기/일시 1978년 10월 20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9년 10월 20일 - 대정공원 묘지에 추모비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0년 10월 8일 - 부산영화평론가협회의 이필우 기념상 제정
출생지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1가 121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학교|수학지 금성중학교 - 일본 도쿄
활동지 부산광역시
묘소 대정 공원묘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지도보기

[정의]

1960년대 이후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영화 촬영 기사.

[활동 사항]

이필우(李弼雨)[1897~1978]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를 8세 때 여의고 어머니가 개가하였으며, 12세에는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는 등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이필우의 아버지는 시계포를 운영하였는데, 그 점포에서 시계·엽총·사진기·환등기·축음기 등의 갖가지 신문물도 취급하고 있어서 이필우는 동생 이명우(李明雨)와 함께 유리로 된 슬라이드를 보거나 만지면서 놀았다. 이 경험이 초기 한국 영화 기술 분야의 개척자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데 일조하였다.

1913년 서울 우미관 영사 기사의 조수로 들어가 일을 배웠고, 1916년 일본 데이코쿠키네마에 입사하여 촬영 기사로 일하면서 촬영과 현상 기술을 습득하였다. 그 후 1950년대 중반까지 36년 간 총 41편의 영화에 참여하여 촬영·녹음·편집·현상·조명·제화 등을 맡았다. 특히 「지기」[1920], 「장한몽」[1920]을 통해 ‘한국인 최초의 촬영 기사’라는 평을 얻었으며, 동생인 이명우가 감독을 맡고 이필우가 촬영과 녹음, 현상을 담당한 「춘향전」[1935]은 조선 최초의 발성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일제 말 「지원병」, 「집 없는 천사」[1941], 「흙에 산다」[1942] 등 어용 영화 몇 편에 참여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 공보실 영화과에 근무하면서 뉴스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1958년 안양 촬영소 초대 촬영소장직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1960년 부산에 정착한 이필우는 부산예술학원, 부산재건뉴스영화제작소 등을 통해 후진 양성과 기술 개발에 매진하였고, 태종대에 ‘부산 영화 촬영소’ 건립을 제안하는 등 부산의 영화 산업 발전에 기여하였다. 특히 1962년에는 카메라맨 손용진(孫勇進)·곽열, 영화평론가 허창(許彰)·박두석(朴斗錫)·정정화, 여배우 하연남, 홍일명(洪一明) 감독 등과 함께 한국영화인협회 부산지부를 창립하고 초대 지부장을 지내면서 영화인의 결집에도 앞장섰다. 1978년 10월 20일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만든 작품으로는 「고종 황제 인산」[1919]·「지기」·「장한몽」·「학생 절의」[1920]·「전선 여자 정구 대회」·「장화홍련전」[1924]·「한강 대홍수」·「쌍옥루전」[1925]·「멍텅구리」[1926]·「홍련비련」·「흑과 백」·「낙원을 찾는 무리들」·「낙양의 길」·「월남 이상재 선생 장례식 실황」[1927]·「창덕궁 순종 부묘의」·「혈마」·「흐르는 사람들」[1928]·「약혼」·「종소리」[1929]·「홍길동전 전편」·「전과자」[1934]·「대도전」·「춘향전」·「아리랑 고개」[1935]·「장화홍련전」·「홍길동전」·「미몽」[1936]·「오몽녀」·「노래 조선」·「심청」[1937]·「청춘 부대」[1938]·「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9]·「청명심」·「산촌의 여명」[1940]·「지원병」·「집 없는 천사」[1941]·「흙에 산다」[1942]·「패자의 수도」·「그들의 행복」[1947]·「제2의 출발」[1955] 등이 있다.

[묘소]

묘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대정 공원묘지에 마련되었다.

[상훈과 추모]

1979년 사망 1주기를 맞아 추모비를 세웠으며, 시나리오 작가 최금동(崔琴桐)이 비문을 썼다. 2000년부터 부산영화평론가협회가 ‘이필우 기념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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