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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642
한자 申敬均
영어음역 Shin Gyeonggyun
이칭/별칭 대공경균(大空敬均),대공구황(大空久晃)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영화감독
성별
출생 시기/일시 1912년 9월 15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0년 - 교토 일본영화연극학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32년 - 도쿄 신코키네마에 입사
활동 시기/일시 1935년 - 발성영화사 입사
활동 시기/일시 1935년 9월 - 일본에서 귀국
활동 시기/일시 1935년 -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로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청구영화사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순정해협」로 감독 데뷔
활동 시기/일시 1939년 - 조선영화인협회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입사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친일영화 「감격의 일기」· 「우리들의 전쟁」 연출
활동 시기/일시 1947년 - 청구영화사 재설립
활동 시기/일시 1947년 - 「새로운 맹세」연출
활동 시기/일시 1951년 - 「진격만리」·「삼천만의 꽃다발」 개봉
활동 시기/일시 1957년 - 「노들강변」 연출
활동 시기/일시 1964년 - 「마도로스 박」
활동 시기/일시 1971년 - 유작 「홍콩부르스」 연출
몰년 시기/일시 1981년 4월 21일연표보기 - 신경균 사망
출생지 경상북도 선산
학교|수학지 선산공립보통학교 - 경상북도 선산
학교|수학지 대구농림학교 - 대구광역시
학교|수학지 일본영화연극학원 - 일본 교토
활동지 신코키네마 - 일본 도쿄
활동지 발성영화사 - 일본 교토
활동지 청구영화사 -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
활동지 부민관 - 부산광역시 중구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에서 활동한 영화감독.

[활동 사항]

신경균(申敬均)[1912~1981]은 1912년 9월 15일 경상북도 선산에서 태어났다. 창씨개명한 이름은 대공경균(大空敬均)·대공구황(大空久晃)이다. 선산공립보통학교·대구농립학교를 거쳐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교토의 일본영화연극학원에 입학하였다. 처음에는 연기자를 꿈꾸다가 나중에 연출부로 전환하였다. 1932년 도쿄의 신코키네마에 입사하고, 1935년 교토의 발성영화사에서 연출부 말단 조수로 일하였다. 이를 통해 신경균은 발성 영화의 촬영 과정을 습득하고 연출 수업을 쌓는 등 정규 영화 교육을 받았다. 1935년 9월에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서 사진부 기자로 일하며, 『조광』을 비롯한 잡지와 신문에 영화에 대한 글을 투고하며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1937년에는 대구 칠성동에 청구영화사를 설립하고, 함대훈 원작의 「순정해협」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여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1939년 조선적 특색을 살린 영화를 만들겠다는 뜻을 품고 진행한 「처녀도」는 투자자가 파산하여 완성하지 못하였다. 이후 조선총독부가 조선 영화를 통제하기 위해 설립한 조선영화인협회[1939년]·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1942년, 뒤에 조선영화사로 개편]에 가입하여 친일의 길로 들어섰다. 그 결과가 1945년에 연출한 「감격의 일기」와 「우리들의 전쟁」으로, 일제 말기의 강제 징용에 대한 선전 정책을 반영한 친일 영화를 만들었다. 이때 「순정해협」·「처녀도」·「우리들의 전쟁」의 제작에는 부산 출신의 촬영기사 양세웅(梁世雄)이 함께 작업하였다.

해방 후 신경균은 청구영화사를 재설립하고, 1947년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청년이 자기 고장을 재건하는 내용의 「새로운 맹서」, 1949년 일제의 징병과 징용으로 희생된 고아들을 보살피는 주인공의 역경을 담은 「대지의 아들」을 연출하여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6·25 전쟁 시기에는 청구영화사를 마산으로 옮기고, 반공을 주제로 한 영화를 잇달아 내놓았다. 이 가운데 1951년에 제작한 「진격만리」, 「삼천만의 꽃다발」은 부산 부민관에서 개봉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신경균은 멜로드라마와 홍콩을 배경으로 한 액션 영화를 주로 연출하였는데, 1964년에 연출한 「마도로스 박」은 부산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1971년 「홍콩부루스」를 마지막으로, 이후 이렇다 할 활동을 보이지 못하다가 1981년 4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대표 작품으로 「순정해협」[1937]·「처녀도」[1939]·「우리들의 전쟁」·「감격의 일기」·「혈과 한」[「피와 땀」][1945]·「새로운 맹서」[1947]·「대지의 아들」[1949]·「여인애사」[1950]·「진격만리」·「삼천만의 꽃다발」[1951]·「혈로」[1954]·「노들강변」·「찔레꽃」[1957]·「마도의 향불」·「화심」[1958]·「애모」·「유정무정」[1959]·「울지 않으련다」·「그대 목소리」·「연연」·「사랑이 피고 지던 날」·「회정」[1960]·「정조」[1961]·「여자의 일생」[1962]·「행복한 고독」[1963]·「형부와 새언니」·「마도로스 박」[1964]·「일등공신」·「영번 상해돌파」[1967]·「홍콩에서 온 여와 남」·「홍콩서 온 마담 장」[1970]·「홍콩서 온 철인 박」·「홍콩부르스」[1971]가 있다. 이 중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쓴 작품은 「순정해협」·「처녀도」·「대지의 아들」·「삼천만의 꽃다발」·「혈로」·「노들강변」·「연연」·「일등공신」·「홍콩서 온 마담 장」이다. 「총검은 갈아 있다」[1953]는 신경균의 시나리오로 조인복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직접 제작과 기획을 맡은 작품으로는 「순정해협」·「새로운 맹서」·「대지의 아들」·「여인애사」·「삼천만의 꽃다발」·「혈로」·「정조」·「홍콩에서 온 여와 남」이 있고, 「베일부인」[1952, 어약선 감독]·「진격만리」[1953, 임운학 감독]는 신경균이 제작한 작품이다. 「우리들의 전쟁」과 「여인애사」는 신경균이 직접 편집을 맡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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